정재근 한국유교문화진흥원장

논산천 상류 병암유원지에서 ‘을문이’를 채집했다. 을문이는 망둑어과에 속하는 작은 민물고기인데 정식명칭은 밀어다. 논산에서는 을문이로 부르는데 "효자고기"로 유명하다.

조선 성종 때 충청도 은진현, 지금의 논산시 가야곡면 함적리에 강응정이라는 효자가 살았다. 한 겨울에 병환 중인 어머니가 개장국을 먹고 싶다고 하셨지만 구할 수 없었다. 집에서 20리 떨어진 양촌장에서 어렵사리 개장국을 구해 논산천을 건너오던 중 얼음에 미끄러져 개장국을 다 쏟았다. 얼음 위에 주저앉아 자신의 불효를 탓하는데 넘어지며 깨진 얼음구멍에 작은 물고기가 몰려들었다. 응정이 이 물고기를 잡아다 어머니께 끓여드리니 맛있게 드시고 병환이 나았다. 이 물고기가 ‘을문이’인데 이런 이야기로 인해 효자고기로 불린다. 응정은 효행으로 천거돼 성종이 효자정려를 내렸고, 그가 만든 향약을 ‘효자계’로 불렀다.

효자고기 ‘을문이’가 중요한 까닭은 유리 상자 속에 박제화된 생명 없는 옛날이야기로 남아 있는 "효"를 오늘날 젊은 세대들이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생명체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함적리 마을은 어르신들이 지금도 마을 출신 젊은이들의 효행을 포상하면서 효자계 정신을 같은 공간에서 500년 넘게 살려오고 있다. 아울러 인근 산노리의 효암서원은 효자정려와 함께 성종이 직접 쓴 현판이 있다. 이 서원은 대학자들을 중앙에 모시는 대부분 서원과는 달리 효자인 강응정이 중앙에 배향돼 있어 가히 효도를 상징하는 역사 공간이라 할 만하다.

효자고기, 효암서원, 효자계를 통해 효도가 살아 숨 쉬는 가야곡면에서 20리 떨어진 부적면에는 계백장군과 사육신의 충성을 기리는 충곡서원이 있다. 통상 문관을 모시는 서원에서 무관인 계백을 주향으로 모셨으니 이 또한 특이하다. 이곳에서 10리 거리의 연산면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돈암서원이 예학의 종장 사계 김장생을 모시고 있다.

멋진 풍광을 자랑하는 탑정호 수변길을 따라 유교문화의 진수인 ‘충·효·예’를 자녀들과 함께 걸으며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삶의 교육 장소가 펼쳐져 있다. 걸어서 하루거리인 이 길을 "충효예 길"로 만들어 내년에 개최할 ‘K-유교문화제’에서 노성, 강경지역과 함께 유교문화를 느끼며 삶을 되돌아보는 힐링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논산시, 충남도와 협의하고 있다.

채집한 효자고기는 양식 연구를 더 하고 가정에서 기르는 것이 가능해지면 어린이들이 효자고기를 선물하고 기르면서 효도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효자고기를 생각하며 수년 전에 지었던 ‘연향(戀鄕)’이라는 필자의 졸시 한 수를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覓柱?忠不未傳(멱주요충불미전) 큰 인물 찾으려면 작은 충성조차 캐어 전하고 / 見親一孝勿弗懸(견친일효물불현) 참효자 만나려면 한 조각 효도마저 칭찬해야 한다 / 以魚故里褒眞孝(이어고리포진효) 내 고향 논산은 효자고기로 참효를 기려왔는데 / 願必忠魚現故川(원필충어현고천) 이제는 논산천에 충성고기 나타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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