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근 한국유교문화진흥원장

한국유교문화진흥원장이 돼 유교의 가르침과 유교문화를 통해 우리사회를 좋게 하겠다고 하니 응원과 함께 우려도 있었다. 부정적 시각의 요체는 두 가지. 첫째는 유교가 21세기 첨단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고리타분한 가르침이라는 것과 둘째는 나라를 망하게 한 유교를 또 들고 나온다는 것이었다.

지난달 30일 중국 쓰촨대학 국제유학연구원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 연구원은 중국 정부의 유교경전 발간 사업인 유장(儒藏)과 파촉전서(巴蜀全書) 편찬의 중심기관으로 활약하고 있다. 지금 중국은 문화대혁명 기간 중 ‘유교가 나라를 망하게 했다’면서 파괴했던 유교문화를 재건하느라 여념이 없다.

한국, 중국과 함께 동북아의 대표적 유교 국가였던 베트남 역시 유교문화가 고속 성장하는 국가발전을 지속시킬 수 있는 철학적, 문화적 바탕으로 기능하도록 국책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한유진과 협력을 맺고 있는 베트남 철학원, 동북아연구원, 한놈연구원은 이 연구 수행의 중심에 있다.

나라를 망하게 하는 원흉으로 지목됐던 유교, 현대 사회와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유교문화를 이 두 나라는 왜 국가 발전의 동반자로 인정하고 진흥하려 할까?

한형조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2023년 한국행정학회 하계학술대회에서 ‘20세기 유교를 읽는 네 가지 시선’에 대해 언급했다. 첫 번째 시선은 ‘부정’이다. 1910~1930년까지 우리는 "망국의 죄, 낙후된 근대는 조선 500년을 지배한 유교 탓"으로 돌렸다. 두 번째 시선은 ‘변명’이다. 1930~1980년까지 우리는 실학에서 위안을 찾았다. 조선 후기 선각자들이 조선의 유교문화를 혁신하기 위한 노력이 아쉽게도 실패했다는 것이다.

세 번째 시선은 ‘전환’이다. 1980~1997년까지 약진하는 아시아 네 마리 용을 보고 세계는 유교를 통해서도 근대화할 수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기 시작했다. 근대화는 유럽 문명만의 산물이 아니며 한국, 중국, 베트남 등은 오히려 더 일찍 근대성의 상징인 관료제 등을 유교를 통해 구축했다는 것이다. 네 번째 시선은 ‘대안’이다. 2000년부터 유교는 문화콘텐츠로 자리매김한다. 드라마, 영화, 대중음악 등에서 불고 있는 한류열풍의 내용은 철저히 유교적이다. 우짠량 대만대 역사학과 교수는 한 교수와의 대화에서 "한국의 작품은 감정과 정서가 살아 있고 관계를 중시한다. 그리고 건전한 정의로운 결말을 갖고 있고, 인간성(Humanity)을 포기하지 않는다. 한류의 중심에 유교가 있다"고 말한다.

한형조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이제 우리는 유교와 유교문화를 ‘부정과 변명’의 시선을 넘어 ‘전환과 대안’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일부 한국인은 여전히 ‘부정과 변명’의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한국의 성장을 이끈 근대성이 유교에서 비롯됐고, 또 세계 문화를 이끌어가는 K-컬처의 중심에 유교문화가 코딩돼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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