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래 대전 유성구청장

1970년 12월, 빌리 브란트는 서독 총리 최초로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했다. 정해진 의전과 절차대로 유대인 위령탑을 찾아 헌화하고 묵념했다. 사고(?)는 그다음 벌어졌다. 묵념을 마친 브란트가 갑자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날 바르샤바에는 겨울비가 내렸다. 사진은 전 세계로 타전됐고, 진정으로 참회하고 반성하는 모습에 전 세계는 찬사를 보냈다.

빌리 브란트의 ‘무릎 사과’는 역사를 바꾼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동시에 의전과 형식을 파괴한 작은 행위가 얼마나 큰 울림을 줄 수 있는지 보여준 사례로 널리 회자한다. 브란트는 형식 대신 본질에 충실했다. 그것은 반성과 참회였다. 왜 무릎을 꿇었느냐는 질문에 브란트는 이렇게 답했다.. "헌화하는 순간, 머리를 숙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고 느꼈다."

지난 14일 유성구 대표 축제이자 대전의 자랑인 ‘유성온천문화축제’가 막을 내렸다. 2박 3일 동안 퍼레이드와 온천수 물총 스플레쉬, DJ 파티를 비롯해 드론 라이트쇼와 불꽃쇼, 공연 등이 온천로를 뜨겁게 달궜다. 코로나 엔데믹 선언 직후 열린 데다 2019년 이후 처음 마련된 대규모 행사였던 만큼 어느 때보다 많은 시민들이 축제를 찾아 만끽했다. 공연장을 뜨겁게 달군 노래와 불꽃이 코로나 극복의 축가이자 축포처럼 느껴졌다. 날씨는 맑았고 시민들의 표정은 밝았다.

이번 축제는 다양한 즐길거리와 먹거리, 많은 시민과 화창한 날씨까지 성공적인 축제의 모든 요소를 갖췄다. 하지만 없었던 게 있다. 바로 관행적인 행사 의전이다. 먼저 개막식에서 내빈 소개나 인사말을 없애고 영상으로 대체했다. 또 내빈석을 객석 맨 앞 중앙에 설치하는 관행에서 벗어나 객석 가장자리로 돌렸다. 내빈석 규모도 35석 정도로 대폭 줄였다. 축제의 주인이자 주인공인 시민이 가장 좋은 자리에 앉도록 하자는 취지다.

당연히 행사 주인공이 주빈(主賓)이 돼야 한다. 축제의 주인공은 시민이며 기념일의 주인공은 그 기념일이 있게 한 분들이다. 이것을 가로막는 장애물 중 하나가 의전이다. 과도한 의전과 형식에 집중하다 보면 본질과 내용은 사라지고 자칫 ‘인사말’만 남는 행사로 전락할 수 있다. 우리 구가 지난해부터 크고 작은 행사에서 의전 최소화에 공을 들이는 이유다.

사계절 축제는 계속된다. 올해 여름과 가을, 겨울에 열리는 축제를 미리 엿볼 수 있는 스포일러 하나. 분명 더 재미있고, 시민에게 다가가는 행사가 될 것이다. 그리고 다짐 하나. ‘유성구발 의전 파괴’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시민 중심의 행사가 정착되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형식과 격식 파괴가 역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행사 문화를 바꾸는 데 일조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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