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가정의 달 특별 기획
삼남매 가족의 입양 이야기
남편 간절함 알게돼 입양 결심
주변 반대·모멸감 넘어야할 산
사랑의 힘으로 ‘명주’ 품게 돼
아이들도 동생 기쁘게 맞아줘

▲ 2남 2녀를 둔 전양순 씨 가족
▲ 2남 2녀를 둔 전양순 씨 가족
▲ 전 씨 부부와 막내아들 명주가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다.
▲ 전 씨 부부와 막내아들 명주가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다.
▲ 전 씨와 그의 자녀가 입양 직후 명주를 가슴에 품고 있는 모습. 본인 제공

 [충청투데이 최윤서 기자] 대전에 거주하는 전양순(53·여) 씨.

그는 태어난 지 3주도 채 안된 명주를 처음 가슴에 품었던 그날을 잊지 못한다.

태열로 피부가 붉게 올라온 명주는 영아원에서 적응을 못한 채 먹고 토하기를 반복했다.

12년 전, 그 당시 전 씨의 나이는 마흔 한 살이었다. 그에겐 이미 1남 2녀의 자녀들도 있었다.

"당시 셋째가 여덟 살이었고 초등학생이었던 첫째와 둘째는 홈스쿨 3년차에 접어들던 시기였어요. 다른 홈스쿨 가정과 교류를 하다 우연히 입양가정을 만나게 됐는데 남편이 오래도록 품고 있던 입양에 대한 소망을 내비치더라고요. 사실 전 그 전까진 단 한 번도 입양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어요."

그제야 남편의 간절함을 알게 된 전 씨는 신앙의 힘을 빌려 기도를 시작했고, 결국 입양을 결심했다.

하지만 남편은 사업을 준비하느라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했고, 전 씨는 허리 건강이 좋지 않은 시기였다. 주변의 반대와 모멸감도 이들이 넘어야 할 산이었다.

"경제적으로 아이 넷을 감당할 수 있을지, 또 마흔이 넘은 나이에 성치 않은 허리로 갓난아기를 엎고, 안고 키울 수 있을지 모든 것이 걱정됐어요. 특히 시아버지께서 경제적 문제로 강하게 반대하셨죠. 친정부모님도 딸 걱정에 만류 하셨고요. 남자아이의 경우, 혈연 중심 가족문화인 한국사회 특성상 유산 문제나 대를 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입양이 여자아이보다 어려운게 현실이에요. 그런데 명주를 처음 가슴에 안은 그날,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시뻘건 얼굴로 우는 그 핏덩이를 놓고 도저히 그냥 올 수가 없었어요."

그렇게 그날 전 씨 가족은 온전히 사랑의 힘으로 명주를 품었다.

전 씨의 아이들도 생각보다 입양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새로 생긴 동생을 기쁘게 맞이했다.

"명주를 입양하고 1년 간은 제가 두 손을 잡아줘야만 잠이 들었어요. 작은 것에도 놀래고 쉽게 불안해하고 저와 잠시라도 떨어지질 못했어요. 밥하고 빨래하고 아이들 홈스쿨링에 육아까지. 그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네요. 경제적 뒷받침을 위해 원했던 사업계획을 접고 재취업한 남편의 어깨는 항상 무거웠고요. 그래도 고마웠던 건 아이들과 교인들이에요. 정성으로 함께 보살펴 줬고, 명주를 정말 예뻐해 줬어요."

명주는 올해 초등학교 5학년이 돼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자신의 입양사실을 인지하고 있으며 성인이 되면 친모를 찾을 수도 있다.

"언젠가 명주가 친모를 찾게 된다면 주저 없이 만나라고 할 것 같아요. 다만 대부분의 입양아들이 친모를 만나면 왜 자신을 키울 수 없었는지 묻는다더라고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어도 마찬가지래요. 결국 이 부분은 명주가 평생 살면서 극복해야 할 숙제인거죠. 스스로 감당해야 할 아픈 감정들을 생각하면 목이 메이지만 명주가 훗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으로 성장할 거란 굳은 믿음이 있어요."

마지막으로 그는 아직도 네 명의 자녀가 다 같은 마음으로 사랑스러운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종종 있다며 낳은 정과 기른 정의 차이는 조금도 없음을 강조했다.

명주를 품에 안고 나서야 진정한 부모가 됐다는 전 씨. 이들 가족에게 명주는 이제 없어선 안 될 더할 나위 없는 소중한 존재다.

최윤서 기자 cys@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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