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적산 전경. 충남 계룡시 제공
향적산 전경. 충남 계룡시 제공

[충청투데이 이심건 기자] 향적산은 충청남도 논산시 상월면 대명리 와 계룡시 엄사면 향한리에 걸쳐 있는 산이다.

향적산 산 이름은 ‘향이 쌓인 산’이라는 뜻으로 향나무가 많이 있었다고 해 유래했다.

국사봉(國師峰)이라고도 하는데 신도안이 도읍이 되면 나라의 왕을 가르칠 스승이 이곳에서 나온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향적산은 동서 비탈이 거의 절벽에 가깝다.

특히 주봉 일대의 서면과 농바위 일대의 양면이 깎아지른 바위 벼랑으로 장관이다.

계룡산에서 뻗어 나온 향적산은 백악기에 대보 화강암을 암맥상으로 관입한 그라노파이어 및 각종 암맥류와 석영맥 등의 반심성암체가 이루고 있는 험준한 암석산지이다.

산지의 방향은 북남 방향으로 연속성이 뚜렷한 산줄기를 이루고 있으며, 산 정상부를 따라 토어나 암석단애 등의 화강암 지형이 일부 발달해 있다.

높이는 574m이며 향적산은 계룡산을 향해 엎드려 절을 올리고 있는 산세로 보기도 한다. 향적산에서 보이는 계룡산은 정상인 천왕봉을 큰 닭의 머리라고 볼 때 서편의 연천봉과 동편의 황적봉이 힘차게 펼친 닭의 날개로 보기도 한다.

향적산 조망은 일품이다.

향적산 정상인 국사봉에 오르면 사방으로 막힘이 없는 조망을 즐길 수 있다.

연천봉에서 문필봉, 쌀개봉, 천왕봉이 이어지는 계룡산의 장관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다.

천왕봉 오른쪽으로는 황적봉, 치개봉, 우산봉, 갑하산, 북동으로는 관암산, 백운봉, 금수봉, 시루봉, 조개봉이 멀리 펼쳐진다.

산줄기 너머로 대전시가지도 시야에 들어온다.

대전 시내를 감싸고 있는 계족산 식장산과 함께 펼쳐진다.

또 서대산, 서대산 오른쪽으로는 금남정맥을 이끌고 나아가는 천마산과 두리봉 뒤로 대둔산이 하늘금을 이룬다.

쾌청한 날씨에는 대둔산 뒤 멀리로 백두대간 상의 민주지산과 덕유산도 보인다.

남쪽과 남서쪽의 드넓은 평야는 옛날 백제군과 나당 연합군이 결전을 벌였던 황산벌이다.

향적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일출. 충남 계룡시 제공
향적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일출. 충남 계룡시 제공

◆ 역사적 인물 및 사건

향적산 부근에 있는 국사봉은 조선 태조 이성계와 연관이 깊다.

정상인 국사봉의 이름 유래는 조선 태조가 신도안을 도읍지로 정하려 할 즈음 이 봉에 올라 계룡산 주변 지세를 살펴보고 나라를 위한 큰 인물이 나올 곳이라 해 한자로 ‘國事峰’, 또는 ‘國師峰’이라 지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향적산의 감회가 깊은 것은 드넓은 황산벌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황산벌(黃山伐)은 오늘날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신양리 및 신암리 일대에 있던 벌판이다.

이곳에서 신라 정예군과 백제군 사이에 황산벌 전투(660년 8월 20일)가 벌어졌다.

백제 계백 장군이 이끄는 5000의 결사대와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 5만 명이 마지막 결전을 치렀고, 신라는 완승하였다.

백제의 5000 결사대는 대부분이 사망하며 이곳에 묻혔다.

또 936년에는 황산 전투가 일어나 후백제가 멸망하고 후삼국이 통일됐다.

형적산 능선. 충남 계룡시 제공
형적산 능선. 충남 계룡시 제공

◆ 문화유산

▲ 향적산 국사봉

국사봉은 계룡산 동쪽 봉우리로 해발 574m이며 계룡시 엄사면과 논산시 상월면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계룡산을 향해 왼쪽으로 연천봉 능선, 오른쪽으로는 천왕봉 능선이 장관을 이루는 계룡산을 잘 조망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며, 정상에는 천지 창운비가 있고, 중턱에는 후천 개벽원리인 정역(正易)을 저술한 일부 김항 (一夫 金恒) 선생이 공부했다는 거북바위가 있는데 그 옆에 국사봉 도장 초당을 짓고 제자들에게 정역을 강론했다고 한다.

▲ 무상사

무상사는 여느 절과는 조금 다르게 국제선원으로 유명하다.

숭산 큰스님이 '이곳은 국가에 크게 쓰일 스승이 날 곳'이라며 세운 선원이다.

하버드대학 출신의 유명한 미국인 현각 스님이 여기에서 수도한 바 있고 지금도 여러 나라 외국 스님들이 상주하며 정진하고 있다.

한국식 전통불교 수행법을 배우기 위해 타국에서 오는 수행자들은 장기간 머물면서 한국불교의 간화선(看話禪)을 체득하고 있다.

간화선이란 화두(話頭)를 근거로 수행하는 참선법이다.

불교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템플스테이도 운영하는 사찰이다.

▲ 거북바위와 용바위

향적산에는 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다.

향적산방에는 일명 산제당이라 불리는 거북바위와 용바위가 볼거리다.

거북바위의 위는 거북이 등처럼 판판하다.

아래는 5~6평의 굴처럼 돼 있으며 거기에서 약수가 나온다.

거북바위 하단부에는 기도를 드리는 동굴이 있고, 왼쪽에는 큰 느티나무가 자라고 있다.

용바위는 거북바위에서 남동쪽 아래 40m 거리 나무숲에 가려져 있다.

거북바위와 용바위가 있는 산제당에서 정역(正易)을 공부한 일부(一夫) 김항(金恒) 선생은 세계의 중심지는 한국이며 한국의 중심지는 계룡산이라 주장했다고 한다.

김항 선생은 산제당에 있는 거북바위가 하도(河圖)이며, 용바위는 낙서(洛書)로 이곳이 계룡산의 중심이 된다고 주장했다.

향적산 정상 국사봉 천지창운비(왼쪽)와 오행비(오른쪽). 충남 계룡시 제공
향적산 정상 국사봉 천지창운비(왼쪽)와 오행비(오른쪽). 충남 계룡시 제공

◆ 설화

충남 계룡시 향적산 국사봉 정상에는 수수께끼 같은 ‘천지창운비’와 ‘오행비’가 세워져 있다.

비가 왜 세워졌는지와 비에 새겨진 특이한 문양과 한자를 정확히 풀이한 내용은 없고 유례로만 전해지고 있다.

천지창운비(天地創運碑)는 한 변이 약 3m쯤 되는 정사각형의 얕은 담 안의 돌비석으로 이뤄졌다.

높이는 2m이고 머리에 판석을 얹은 모양새다.

비의 동쪽 면에는 천계황지(天鷄黃池), 서쪽 면에는 불(佛), 남쪽 면에는 남두육성(南斗六星), 북쪽 면에는 북두칠성(北斗七星)이라고 적힌 글자가 새겨져 있다.

​비석 아래쪽에는 심(心) 자가 네 개의 면에 쓰여있다.

비의 지붕에는 해, 달, 별이 그려져 있고 일월조림(一月照臨)이란 글이 있다. 담을 이루는 네 모퉁이 기둥 돌에도 ‘원, 형, 이, 정(元·亨·利·貞)’이 한 글자씩 새겨져 있다.

또 특이한 것은 천지창운비의 사각형 지붕의 네 모서리마다 3개의 구멍씩 총 12개가 뚫려 있다.

지금은 구멍만 남았지만, 예전에는 12개 보석이 박혀 있었다고 한다.

천지창운비 옆 오행비(五行碑)도 눈길을 끈다. 이 비의 높이는 약 1.6m다. 사각 돌기둥으로 서면에 화(火), 남면에 취(聚), 북면에 일(一), 동면에 오(五)자가 새겨져 있다.

이 비석들이 세워진 정확한 내용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에 살던 조 모 할머니가 일제 강점기에 묘향산과 구월산에 있던 단군성조의 얼을 이곳으로 옮겨 모시고 단군 성조를 섬기다 1948년 별세했다. 그러자 며느리인 손씨 부인이 시어머니 공덕을 기리고 그 정신을 받들기 위해 국사봉 정상에 비를 세웠다. 그러나 '천지창운비'와 '오행비'의 글과 그 글의 뜻을 정확하게 풀이한 사람은 없다.

또 다른 유례로는 1923년 두마면으로 이주해온 천도교 초부당 오 모 씨에 의해 비석이 건립됐다. 오 씨는 국사봉의 자태가 천계황지(봉황이 깃드는 천하 길지)로 당시의 항일투쟁과 국난에 위태한 국권이 회복되기를 기원하고자 비를 세웠다. 예전에는 천지창운비를 중심으로 팔각형의 정자가 건립돼 비석을 보호했다. 정자의 외각에는 십이지신상이 조각돼 있었다.

향적산에서 내려다 본 계룡시 풍경. 충남 계룡시 제공
향적산에서 내려다 본 계룡시 풍경. 충남 계룡시 제공

◆ 등산 코스

1코스: 무상사주차장 - 향적산방 - 헬기장 - 향적산 - 헬기장 - 게룡산조망터 - 싸리재 - 물탕 - 무상사주차장 (4.8km, 3시간)

2코스: 무상사주차장 - 향적산방 - 장군암 - 국사봉 - 맨재 - 청송약수터 (7.6km, 3시간 40분)

3코스: 요양병원 앞 도로 - 도로 좌측 임도 - 도곡사 - 주능선 - 향적사 - 엄사리방향 - 향한리방향 - 원점회귀 (7km, 3시간)

이심건 기자 beotkkot@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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