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삼(三), 종이 지(紙), 없을 무(無), 나귀 려(驢). 종이를 석장이나 없애고도 나귀 려(驢)자를 쓰지 못한다. ‘세 장의 종이를 썼으나 나귀 려(廬)자가 없다’라는 뜻으로, 재주도 없으면서 허세를 부리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중국 육조시대(六朝時代) 말 기의 문학가 안지추(顔之推:531-591)가 자손을 위해 저술한 안씨가훈(顔氏家訓) ‘면학편(勉學篇)에 나오는 다음 이야기에서 유래한 성어(成語)이다.예전에 한 선비가 글재주도 없는데 항상 붓을 가지고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재주가 있는 체하며 자랑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죽을 사(死), 재 회(灰), 다시 부(復), 불붙을 연(燃). 다 타버린 잿더미에 다시 불이 붓다. 전한(前漢) 5대 문제(文帝)의 둘째 아들인 양왕(梁王)의 밑에서 높은 벼슬을 하던 한안국(韓安國)이 모함을 받아 투옥되자 전갑(全甲)이라는 옥졸이 심한 모욕을 줬다. 그러자 한안국이 분개해서 말했다."이놈아 다 타버린 잿더미라 해서 불이 붙지 않을 줄 아느냐?(사회독불복연호:死灰獨不復燃乎)"그 말을 들은 진갑이 비웃으며 말했다. "다시 불붙는 것 좋아하네. 만일 그렇게 되면 내가 오줌을 싸서 그 불을 꺼버릴 테니 걱정 말아라."얼
넉 사(四), 나눌 분(分), 다섯 오(五), 찢을 렬(裂). 넷으로 나뉘고 다섯 갈래로 찢기다.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전략가들이 여러 책략을 모은 ‘전국책(戰國策)의 위책(魏策)편에 나오는 말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진(秦)나라를 제외한 여섯 개 나라를 상대로, 서로 상반된 이론인 합종책(合縱策)과 연횡책(連衡策)을 가지고 소진(蘇秦)과 장의가 불꽃 튀는 대결을 벌일 때의 일이다.장의가 합종의 모순과 연횡의 이로움 대한 설득을 하기 위해 위애왕(魏哀王)에게 위나라의 이해득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위나라가 남쪽으로 초(楚)나
왕개미 비(?), 왕개미 부(?), 흔들 감(?), 나무 수(樹). 왕개미가 커다란 나무를 흔든다.중국 역사상 위대한 시인으로 쌍벽을 이루는 이백(李白)과 두보(杜甫)가 죽은 지 몇 십 년이 지난 후에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인 한유(韓愈)가 문단에서 한창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당시만 해도 이백과 두보의 명성이 지금처럼 확고하지 못할 때라서 그들의 작품을 과소평가하고 헐뜯는 사람들이 이따금 있었다. 이에 한유는 그들을 격렬하게 비난하는 내용의 ‘조장적(調張籍)’이라는 시를 지어서 두보를 숭배하던 친구 장적(張籍)에게 전했
나아갈 부(赴), 끊을 탕(湯), 밟을 도(蹈), 불 화(火). 뜨거운 물속이나 불속이라도 헤치고 나간다. 부탕투화(赴湯投火:어떤 괴로움이나 위험한 일을 피하지 않는 태도)라고도 한다. ‘끊는 물과 타오르는 불 속으로 들어간다’는 뜻으로, 물과 불을 가리지 않으며 위험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뛰어 들어간다는 말이다.중국 전한(前漢) 6대 황제인 경제(景帝)때 삼공(三公)의 하나인 어사대부(御史大夫) 조조(曹操? -BC154)는 학문이 깊고 기개가 높아서 황제도 그의 말이라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로 신임을 했다.오왕(吳王) 유
만물 물(物), 다할 극(極), 반드시 필(必), 되돌릴 반(反). 세상 만물의 형세는 최고조에 달하면 반드시 뒤집힌다.사물이나 형세는 고정불변인 것이 아니라 흥망성쇠를 반복하게 마련이라는 뜻도 있고,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뜻도 담겨 있다.세강필약(勢强必弱:세력이 강성하면 반드시 약해지기 마련이다)과 연결하여, ‘물극필반 세필강약’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노자도덕경’에 나오는 물장즉노(物壯則老:만물은 장성했다가는 쇠퇴하기 마련이다)나,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열흘 붉은 꽃이 없다)이나 우리나라 속담의 ‘
희 백(白), 갈 왕(往), 검을 흑(黑), 돌아올 귀(歸). 흰옷을 입고 나갔던 사람이 검은 옷을 입고 돌아오다.한비자(韓非子)가 설림 하(說林 下)에 등장시킨 양주(楊朱)라는 이는 전국시대 중엽의 사상가인 묵자(墨子)와 대조적인 사상을 주창했다.묵자가 겸애(兼愛)를 주창하면 반면 양주는 극단적인 이기주의를 내세웠다. 그래서 맹자(孟子)는 말했다."양주란 자는 부모도 없고 오직 나 뿐이다. 그리고 묵자는 모든 이를 똑같이 사랑하니 군주가 없다. 아비가 없고 군주가 없으니 이는 들짐승이나 길짐승과 무에 다를 것이 있는가."춘추시대
눈 안(眼), 가운데 중(中), 어조사 지(之), 못 정(釘). 눈 속에 박힌 못.나라가 망할 무렵이 되면 여러 가지 말기적 현상이 나타나는 법이지만, 그 중의 하나가 탐관오리에 의한 부정부패다. 정치의 기간이 흔들리는 기회를 틈타 사리사욕을 챙기려고 기를 쓰기 때문이다.당(唐)나라 말기의 사람인 대표적인 탐관오리(貪官汚吏) 조재례(趙在禮)가 곧 그런 부류의 전형적인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하북절도사(河北節度使 )인 유인공(劉仁恭) 밑에서 일했으나 권력자에게 아부하고 뇌물 공세를 펴서 출세하기 시작해서 승승장구했고, 당나라가 망
다른 사람이 자신의 허물을 지적하는 소리를 들으면 기뻐한다는 말로, 남이 자신을 비평하거나 잘못된 점을 허물하더라도 그것을 오히려 약으로 여겨 거리낌 없이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맹자(孟子) 공손추상(公孫丑上)’편에 나온다.맹자가 언(言) 하였다."자로는 남이 잘못한 것이 있다고 하면 기뻐했고, 우임금은 좋은 말을 들으면 절을 했다.(자로인고지이유과즉희 우문선언즉배:子路人告之以有過則喜 禹聞善言則拜). 위대한 순(舜)임금은 그 보다도 더했다. 남과 함께 하기를 잘해서 자기를 버리고 남을 좇아 남의 의견을 취해 선을 행하기를 즐거워했다.
어미 소가 어린 송아지를 핥아주듯 부모의 지극한 자녀 사랑을 말하며‘후한서(後漢書) 열전(列傳)에 나오는 다음 이야기에서 유래했다.중국 후한(後漢) 최후의 황제인 헌제(獻帝)가 즉위 할 무렵 천하가 어지럽고, 그 말기에는 위(魏).오(吳) .촉한(蜀漢)의 이른바 삼국정립(三國鼎立)의 형세로 굳어졌다.위(魏) 나라의 조조(曹操:155-220) 는 스스로 황제자리에 올라 위왕(魏王)이라 칭했다. 3년 뒤 유비(劉備)와 한중(漢中)의 땅을 두고 전쟁을 일으켰다.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 주부(主簿)를 지낸 양수(陽修)는 재능이 뛰어나고
삼국시대를 풍미한 대표적 인물인 제갈량의 형 제갈근(諸葛瑾)은 아우의 명성에 묻혀 두드러지진 못했으나, 어질고 현명한 선비로 이름이 높았다. 아우가 현덕 유비의 군사(軍師)였음에 비해 그는 오나라 손권을 섬겼으니, 정치적으로 대립 관계였던 셈이다. 중국의 삼국시대 오(吳)나라 손권(孫權)의 참모 제갈근(諸葛瑾)의 아들 제갈각(諸葛恪)은 어려서부터 남달리 총명하고 지혜로 움에 오왕 손권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제갈각이 6살 때 아버지 조정 연회에 나갔는데, 장난기가 발동한 손권은 당나귀 한 마리를 끌고 오라고 한 다음, 종이에다 ‘
근수누대선득월(近水樓臺先得月)을 줄인 말로 근수누대(近水樓臺)라 하며,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접근해 덕을 보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청야록(淸夜錄)에 기록됨은 다음 이야기에서 유래했다.중국 북송(北宋) 인종(仁宗)때 학자이며 정치가였던 범중엄(范仲淹.989-1052)은 사람됨이 겸손하고 아랫사람들과도 격의 없이 잘 어울려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은 인물이다.범중엄이 지금의 중국 항저주(抗州) 인근 전당(錢塘)에서 지주(知州:지방장관)로 근무할 때였다.그는 인근 관리들 가운데 인재를 조정에 추천해 적재적소에 쓰일 수 있도록 도왔다.어느
군자는 문사(文士)의 붓끝(필단:筆端), 무사(武士)의 칼끝(봉단:峰端), 변사(辯士)의 혀끝(설단:舌端)을 피해야 한다는 말이다.군자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분쟁에 휘말리는 일을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하며, 시경(詩經)의 해설서인 ‘한시외전(韓詩外傳)에 군자피삼단(君子避三端)이다. 필화(筆禍), 살화(殺禍), 설화(舌禍)를 당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아름다운 깃털과 굽은 부리를 가진 새를 새들도 두려워하고, 물고기 가운데 입이 크고 아랫배가 살찐 것을 물고기도 두려워하며, 사람들은 말솜씨가 좋고 말수가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군자(君子)는 생각해야 할 아홉 가지가 있다(君子有九思)‘1. 시사명(視思明):사물을 볼 때는 분명하게 본 것을 생각하고, 2. 청사총(聽思聰): 들을 때는 똑똑히 들을 것을 생각하며, 3. 색사온(色思溫):얼굴빛은 온화하게 가질 것을 생각하고, 4. 모사공(貌思恭):용모(容貌)는 공손한자를 생각하며, 5. 언사충(言思忠):말을 할 때는 진실하게 할 것을 생각하며, 6. 사사경(事思敬): 일을 할 때는 신중한지를 생각하며, 7. 의사문(疑思問):의심이 날 때는 물어 볼 것을 생각하고, 8. 분사난(忿思難):
교자채신(敎子採薪), 한자대로 보면 ‘자식에게 나무하는 법을 가르치다’라는 뜻인데, 보통 ‘물고기를 잡아 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라’라는 그러니까 대신 해주지 말고 직접 할 수 있도록 방법을 가르쳐라 라는 뜻으로 볼 수 있는 고사성어(故事成語)다.교자채신(敎子採薪)의 고사(古事) 출전(出典)은 당(唐)나라 때의 학자 임신사(林愼思)가 지은‘속맹자(續孟子) 송신(宋臣) 편으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하루는 맹자가 송신에게 ‘그대의 왕은 백성들에게 어떻게 하느냐’라고 물었다. 이에 송신이 ‘잘 어루만져 주며,
기원전 68년, 한나라 선제(宣帝) 때의 일이다. 조정에서 시랑(侍郞) 정길(鄭吉)과 교우(校尉) 사마희(司馬憙)에게 서북 오랑캐 차사국(車師國)을 차라는 명령을 내렸으므로, 두 사람은 가을 수확이 끝난 뒤 군사를 이끌고 출발했다.차사왕은 청했으나, 흉노가 시들하게 듣고 구원군을 보내지 않는 바람에 싸우기도 전에 한나라에 항복하고 말았다. 사태가 이처럼 전격적으로 끝나자, 흉노 진영에서는 그제서야 소동이 일어났다."아니, 차사왕이 그처럼 간단히 항복해버릴 줄이야!""차사국은 땅이 비욱하고, 우리와 인접해 있다. 그들이 한나라에 완전
긴박한 주위 사정을 깨닫지 못하고 감상(感傷)이나 비탄에 빠져 제 스스로 화(禍)를 불러들임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로 개문납도(開門納盜), 개문납적(開門納賊)이라고도 한다.삼국지(三國志) 사칠손권전(四七孫權傳) 편에 후한(後漢)말 오군(吳郡)태수 허공(許貢)은 강동 일대에서 용맹을 떨치던 손책(孫策)을 제거하려고 황제에게 밀서를 올리려다 발각되어 일족이 모두 참살 당했다. 이때 간신히 탈출에 성공한 허공의 식객 세 사람은 주인의 복수를 위해 사냥을 즐기던 손책을 미리 기다리고 있다가 습격했다. 뜻밖의 기습으로 중상을 입은 채 가까스로
송(宋)나라 2대 황제 태종(太宗)은 독서를 무척 좋아했는데, 그 중에서도 역사책을 즐겨 읽었다. 그는 이방(李昉) 등의 학자에게 사서(辭書)의 편찬을 명해 7년 동안의 긴 세월에 걸쳐 1000여 권이 넘는 방대한 양의 책을 새로이 간행했고, 이미 간행된 1600여 종의 자료까지 포함해 55개 부분으로 분류해서 이용이 매우 편리하게 만들어 놓았다. 이 책은 태평흥국(太平興國) 8년까지 태평연간(太平年間)에 완성되었으므로 그 연호를 따서 태평총류(太平總類)라 이름 지었다.책이 발간되자 태종은 매우 흡족해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읽기 시작
육기(陸機) 맹호행(猛虎行)의 구(句)에 ‘목이 말라도 도천의 물은 마시지 않고(갈불음 도천수:渴不飮盜泉水), 더위에도 악목의 그늘에서는 쉬지 않는다(열불식악목음:熱不息惡木陰). 악목인들 어찌 가지가 없겠냐마는(악목기무지:惡木豈無枝), 뜻있는 선비는 고심이 많구나(지사다고심:志士多古心)! 수레를 정비하여 시대의 명령을 받들고(정가숙시명:整駕肅時命), 지팡이 짚고 먼 곳을 찾으려 하노라(장책장원심:杖策將遠尋). 배고프면 맹호의 굴에 들어가 먹고(기식맹호굴:饑食猛虎窟), 추우면 들판에 있는 참새 숲에서 머문다(한서야작림:寒栖野雀林).
중국 삼국시대 오(吳)나라의 명장 여몽(呂蒙)은 어린 시절 재주는 있었으나 집안이 워낙 가난하고 의지할 데도 없어 오로지 무예에만 힘을 쏟았을뿐 글공부는 전혀 없었다.뛰어난 무예로 장군까지 되었으나 무식하고 교양이 전혀 없는 그는 동료 장수들에게 무시를 당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손권(孫權)이 어느 날 여몽을 불러 다음과 같이 말했다."장군은 오나라를 위해 큰일을 해야 할 사람이니 마땅히 글을 읽어 학문과 교양을 쌓도록 하시오.""소신은 책을 읽으려 해도 글을 모르며, 또한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어느 틈에 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