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정치지형 변화 촉각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로 1960년대 이후 한국 정치를 주도했던 이른바 ‘3김(金) 시대’가 막을 내렸다.

3김 시대는 영남, 호남, 충청이라는 지역적 기반이 그 축을 이루고 있어 향후 정치권 리더 경쟁이 지역적 기반을 벗어난 새로운 어젠다를 만들어 낼 수 있을 지도 관심을 끌고 있다.

3김 시대는 김 전 대통령(호남), 김영삼 전 대통령(영남),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충청)의 성씨가 김 씨라서 붙여진 별칭으로 이들이 사실상 정치적 리더로 경쟁과 협력을 통해 한국정치사를 끌어왔다.

특히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은 ‘양김’이라 불리며 민주화를 위한 협력관계를 70~80년대 보여줬고, 김영삼-김종필은 소위 3당 합당의 주역으로 협력했고, 김대중-김종필은 DJP 연대를 통해 대권을 거머쥐기도 했다.

반면 양김이라 불렸던 김대중과 김영삼은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대통령 경쟁자로 나서면서 두 번의 대선에서 맞붙었고 이후에는 영원한 라이벌이라 불릴 정도로 서로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김영삼과 김종필은 3당합당 이후 정권 창출에 성공했지만 김영삼 측에서 김종필에 대한 ‘토사구팽’을 강행하면서 사이가 벌어져 결국 등을 돌리게 된다.

김대중과 김종필은 1997년 대선 승리로 연합정권을 형성하지만 이후 내각제 포기 등을 둘러싼 갈등으로 적대관계가 형성됐다.

3김 정치가 가능했던 것은 이들이 지역 맹주로 든든한 기반을 갖고 있었던 때문으로 김대중은 호남에서, 김영삼은 영남에서, 김종필은 충청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지역주의 타파, 3김 정치 청산을 기치로 내걸었던 고 노무현 대통령도 호남에서의 절대적 지지가 그 기반이 될 정도로 3김 정치의 뿌리는 깊었다.

1987년 직선제 개헌이후 3김 정치가 고착화 되면서 지역감정에 기반한 투표 양상이 벌어졌고 이는 대선은 물론이고 총선에서도 특정 정당의 ‘싹쓸이’ 경향을 보였고 이에 따라 ‘공천=당선’이란 인식이 널리퍼졌다.

공천권을 3김이 좌지우지 하면서 능력이나 전문성이 아닌 공천헌금, 충성도 등이 공천기준이 됐고 금권정치, 지역주의 보스정치 등의 부정적 경향을 보여왔다.

김 전 대통령 서거로 3김 정치의 공과는 역사 속으로 던져지게 됐지만 지역주의라는 견고한 틀은 아직까지 풀지 못한 숙제가 되고 있다.

정치권이 3김 정치를 벗어나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 지 관심이 쏠리는 대목이다.

서울=김종원 기자 kjw@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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