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DJ와 충청의 인연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사에 있어 ‘충청’은 언제나 그의 중심을 차지했다.

김 전 대통령과 민주화 운동을 함께 해온 많은 사람들은 "그의 정치행보는 충청에서 시작해 충청에서 끝을 맺었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첫 두각을 나타낸 곳이 대전이었다는 사실은 그리 알려진 사실이 아니다.

1967년 40대 초반의 신민당 김대중 의원은 3선 개헌 반대 투쟁에 돌입, 전국을 돌며 시국강연을 벌였다. 그 첫 무대가 대전이었다.

두 시간 여의 강연은 '김대중'이라는 인물을 충청인은 물론 국민들의 뇌리 속에 깊이 각인시키기에 충분했고 이후 대전의 민주화 세력들이 김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뭉치도록 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대전에서 시작된 시국강연은 3선 개헌 다음해인 1970년 9월 김대중을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선출시키는 단초 역할을 했다.

대전·충남지역 민주화 운동의 '대부(代父)'격으로 김 전 대통령과 40년 이상 함께 활동해 온 송좌빈(85·宋佐彬) 선생은 "군부독재정권의 조작으로 영·호남이 동서로 갈라졌는 데 그 한 가운데 충청도가 있었다"며 "김 선생(송 선생은 김 전 대통령을 선생이라 불렀다)은 1967년 3선 개헌 당시나 1971년 첫 대선 유세를 대전에서 출발하는 등 모든 정치 행보의 기치를 대전에서 올렸다"고 말했다.

충청도가 영남과 호남 등 어느 곳에도 치우침 없는 정치적인 균형 추 역할을 해 왔으며 충청도의 민심을 확보해야 전국의 민심을 이끌 수 있다는 사실을 김 전 대통령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김 전 대통령과 충청권의 인연은 이른바 ‘DJP(김대중-김종필)연대’를 통해 절정을 이룬다.

1997년 11월 충청지역의 맹주를 자처하던 자유민주연합의 김종필 총재와 대통령 후보 단일화에 성공할 당시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는 두 당의 단일후보로 대통령선거에 나섰다.

1997년 12월 18일 실시된 제15대 대통령선거에서 그는 여권후보의 분열과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불러온 외환위기를 등에 업고 여당인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다.

당시 김대중 후보는 1032만 6275표로 993만 5718표를 얻은 이회창 후보를 88만 99443표 차이로 눌렸다.

특히 대전과 충남, 충북 등 충청권은 충남 출신의 이회창 후보 보다 더 많은 표를 몰아주면서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김 전 대통령은 김종필 총재를 국정운영의 파트너인 국무총리로 기용하게 된다.

또한 2000년 9월 28일, 대덕연구단지는 김 전 대통령의 방문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벤처산업의 요람을 표방하며 정부가 공인한 벤처밸리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대덕밸리 선포식을 개최하는 순간이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직접 대덕밸리 선포식에 참가할 정도로 대덕밸리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 이후 대덕특구는 대덕밸리라는 타이틀 속에 세계적인 과학기술의 메카로 오늘날까지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계룡시의 승격도 김 전 대통령의 관심과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기간이었던 2001년 충남도를 방문한 자리에서 계룡출장소를 특례시로 승격하는 방안에 대해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계룡시는 90년대 시 승격을 전제로 도 직할 출장소가 설치됐지만 인구 등 시 승격 요건을 갖추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김 전 대통령이 “인구가 모자라도 특수성을 감안해 시로 승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과감한 결단을 내렸고 2003년 계룡시가 공식 출범하는 계기가 됐다.

2006년 11월 김 전 대통령의 공주대학교 기숙사 숙박도 충청인들에게 오랫동안 회자될 기억으로 남아있다.

김 전 대통령은 그 해 11월 15일 공주대로부터 명예교육학 박사학위를 수여받기 전날인 14일 공주를 방문했다.

당시 학교 측은 김 전 대통령의 숙소로 대전의 한 호텔을 예약했지만 김 전 대통령은 “차디찬 감옥에서도 잠을 잤는 데, 학교 기숙사면 어떠냐”며 이희호 여사와 교내 기숙사인 ‘비전하우스’에 묵은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날 저녁식사와 다음날 아침식사, 점심식사까지 이 기숙사의 스카이라운지 식당에서 해결했다.

김 전 대통령은 “공주에 왔으니 공주에서 잠을 자는 게 공주시민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며 기숙사에 머문 속뜻을 밝혀 당시 공주시민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과 함께 활동했던 충청지역 인사들은 “김 전 대통령은 진정한 마음으로 충청을 아끼고 배려했다”며 “김 전 대통령은 다양한 방면에서 충청을 위해 배려하고 노력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선우 기자 swlyk@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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