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윤석 대전을지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양윤석 대전을지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양윤석 대전을지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의료 개혁에 대한 의료계와 정부 갈등이 의대 정원 2000명에 묶여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무엇이 그들을 파행으로 몰고 있는가?

정부 비법은 의사를 더 뽑자는 것이다. 의대 정원 확대는 ‘의료 정상화’의 필요조건으로, 선(先) 2000명 증원, 후(後) 의료 시스템 개혁이다. 반면 의료계는 선 의료 시스템 개혁, 후 의대 증원이다. 의료계는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과 같은 필수 의료 붕괴, 빅5 병원에서 지방 환자를 블랙홀처럼 싹쓸이 하는 양극화 진료와 지방 의료 낙후는 의사 수 부족이 아닌,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이 망가졌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타협점이 없어 보이는 의·정 간 갈등도 잘 살펴보면 핵심은 같다.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은 그 수명을 다했다는 점과 의료 시스템 개혁을 했어야 한다는 당위성이다. 다만 의대 증원 속도와 수가 다를 뿐이다.

또 하나 기이한 의견 일치가 있다. 의료계·정부·언론 모두 ‘현재의 비상진료 체계가 대한민국 의료의 비정상을 정상화시켰다’는 점을 강조한다. 환자들이 진짜로 위급하지 않으면 무작정 응급실로 오지 않는다. 대학병원 외래도 한산하다. 환자들도 달라졌다. 병원 쇼핑은 없어졌다. 빅5 병원을 찾아 서울로 가는 원정 진료 기세도 한풀 꺾였다.

상급병원은 응급 및 중증 환자를 맡고, 중등증과 경증 환자는 2차 병원, 지역 환자는 지역병원에서 진료를 받는다. 의료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인해 비정상 의료체계가 정상적인 의료 체계로 운영된다고 선언하고, 언론도 ‘의료 파행이 역설적으로 의료 전달 체계를 정상으로 돌려놓고 있다’고 한마디 거든다.

문제는 비정상 의료체계가 정상화되니, 빅5 병원이 도산 위기에 빠진다는 것이다. 전공의가 없어진 전문의 중심의 병원, 지방 환자가 없어 외래 진료 줄이고 중환자 중심의 진료를 하다 보니 병원 경영에 적신호가 울린 것이다. 의료 파행이 만든 비정상의 정상화가 국가의 필수 인프라인 대학병원, 더 심각한 지방 대학병원의 경영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이런 도산 위기와 파행 없이 비정상적인 의료체계를 정상화 시키는 것을 우리는 ‘시스템의 구축’이라고 부른다.

한국 의료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의대 증원을 넘어 미래를 준비하는 의료 개혁을 시작해야 한다. 비대면 진료, 상급 병원과 지방의료의 네트워크 연결, 지역중심의 분만센터와 연계된 분만 진료 체계, 인공 지능 진료까지 ‘미래의 대한민국 의료가 가야 할 길’을 의료계와 정부, 국민이 함께 연구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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