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우 배재대학교 아트앤웹툰학과 회화 교수 평생교육원장

누군가의 투병 중인 삶을 보고 그 사람에게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까? 안타까움은 투병 중에도 다 불태우지 못한 것이 투병 중임에도 열정이 있어 보일 때다.

나 다움이라는 것. 아무리 아름다운 삶도 악마 같은 시간을 이길 수는 없다.

사람은 타인의 모습을 보고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 같다. 잊고 있다가 내 나이와 같은 사람을 볼 때면 내가 많이 늙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마다 아름다운 삶의 정의와 방법은 제각기 다르다. 특히 노년의 삶은 더더욱 아름다워야 한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내 노년의 삶은 아름다울 수 있을까? 죽음에 가까워지는 나이가 되어 갈수록 아름답게 잊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아름답게 잊힌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 같은 화가는 살면서 그다지 많은 사람들을 만나지 않아도 되는 직업이다. 교수 정년이 되고 나면 더 그렇게 될 것이다. 내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내 그림이 다른 사람을 만나 특별한 여운을 남긴다면 화가로서의 삶은 그만인 것이다.

나이 들어보니 더 이상의 인연을 짓는 일은 내게 주어진 시간에 배신행위다. 인연에 치여 허물어지는 시간이 오면 노년은 아름다워질 수 없다. 인연도 다이어트가 필요한가 보다. 나이 들어 좋은 건 그다지 필요 없는 인연은 줄이고 내면의 아름다움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연을 줄이면 ‘고독’이라는 명약이 그 빈자리를 채운다. 나를 채워가야 할 시간에 잘못된 인연으로 잘못 보낸 시간에 보복을 받고 있음에 괴롭다.

이 마음이 오늘 내리는 가을비에 씻겨질까? 그림으로 나를 아름답게 기록해 가야 하는데 시간만 죽이고 있으니 요즘은 내가 불쌍하다. 아름답게 산다는 것은 어렵지도 않지만 결코 쉬운 것도 아니다. 노년을 아름답게 살아야 하는데 말이다.

자청해서 고독한 직업을 선택한 화가는 되새긴다. 고독도 잘 다스리면 삶의 명약이 된다고 말이다. 두서없는 깊은 밤에 쓰는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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