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서·대전본사 편집국 교육문화부 기자

[충청투데이 최윤서 기자] 자그마치 16년 전의 일이다.

필자는 중학교 3학년, 한창 사춘기에 무르익을 나이였다.

우리 반엔 말수가 없고 상대방의 눈도 잘 쳐다보지 못해 항상 혼자 다니는 친구가 있었다. 어깨는 굽어 있었고 말할 때 쇳소리가 났던 목소리는 한껏 경직돼 있었다.

유독 새 하얗던 피부와는 대조적으로 칠흑 같았던 앞머리가 늘 눈 위를 덮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세상과 단절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던 것 같다. 조손가정이었던 그는 쉽게 불량학생들의 표적이 됐다.

그러던 어느 가을 밤, 귀뚜라미 소리가 유독 구슬프게 울었던 야간자율학습시간이었다. 그 아이가 집에서 농약을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문이 돌았고, 조용했던 교실은 어수선해졌다. 이미 며칠 째 그가 등교를 하지 않았음에도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나 조차도 당시엔 그냥 헛 소문이겠거니 넘어갔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학교는 발칵 뒤집어졌고 소문은 사실이었다.

예민한 시기, 심지어 같은 반 친구의 일이었기에 충격은 상당했다. 그 어떤 선생님도 이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고 소란은 잠시 뿐이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학교는 정상적으로 굴러갔다.

드라마 ‘더 글로리’ 속 문동은을 보며 잊고 살았던 16년 전의 그 친구가 많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는 나의 부채의식은 취재 과정에서나 이렇게 매체를 통해 학교폭력 소식을 접할 때면 스물 스물 올라오곤 한다.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 보호 받아야 할 학교는 피해자들에겐 오히려 폭력의 현장이었고, 하루하루 지옥 속에 사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코로나19라는 암흑기에 학교폭력이 줄었다는 이 웃지 못할 통계도 이를 역설하고 있다.

나 또한 시간이 흘러 결혼을 하고 언젠간 꼭 좋은 부모가 되리라는 꿈을 꾸고 있기에 학폭 이슈들은 더 더욱 남일 같지 않다.

"근데 엄마, 내가 누굴 죽도록 때리고 오면 더 가슴 아플 거 같아, 아님 죽도록 맞고 오면 더 가슴 아플 거 같아?"

고2 딸의 이 질문은 김은숙 작가가 ‘더 글로리’를 쓴 계기가 됐다고 한다.

누구의 자녀가 됐든 학폭의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주는 메세지다.

한국사회에서 학교 폭력은 결코 드라마 속에서나, 뉴스에서나 볼 법한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당시 많은 부모에게 생각할 거리를 줬다.

더 글로리가 쏘아올린 공이 선한 영향력으로 자리 잡아 수십 년간 이어져 온 학폭의 고리를 끊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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