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서예 창시자 시몽 황석봉 선생
지역민 기쁨·희열 주려고 고향 돌아와
올해 서산창작예술촌 관장직 ‘10년째’
서예아카데미 운영… 콘텐츠·개발 확대
지역문화 공동사업 발굴… 삶의질 향상
‘백세주·아침햇살’ 등 브랜드명 작업
대중에 현대서예 알리는 계기 만들어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 첫 서예기획전
초대작가 5인안에 들어… 서산의 자랑
“지역예술 발전·서예 세계화 힘쓸 것”

▲ 시몽 황석봉 선생.

[충청투데이 이의형 기자] 보석 같은 그 사람이 충남인은 것은 지역민들에겐 큰 행운이다. 특히 고향인 서산에 둥지를 틀고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것은 도민들에게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서예가로서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그가 고향 행을 결심한 것은 오롯이 창작활동을 통해 지역민들에게 기쁨과 희열을 선사하기 위해서다. 2011년 11월 서산시가 황석봉 선생을 고향으로 모시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한 몫을 했다. 시는 그 당시 지곡면 중왕리에 있는 산성초등학교 중왕분교를 리모델링해 예술인들을 초빙, 지역민들과 함께하는 창작예술촌을 계획하고 적극적인 행동에 나섰다. 경기도 의왕시에서 시와 독지가의 도움을 받아 활발한 예술활동을 하던 황석봉 선생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서산창작예술촌(전 안견창작스튜디오) 초대 관장직을 수락했다. 올해 11월이면 관장직을 맡아 지역문화예술 창달을 위해 헌신한 지 꼭 10년이 된다. 10년간 황 선생은 지역 예술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지역에 산재해 있는 예술콘텐츠의 개발과 확대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을 위해 서예아카데미를 운영하고 2013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최하는 문화이모작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회초리를 청하다’라는 인문학 강의를 개설, 직접 강의에 나서기도 했다.

특히 황 선생은 지곡면 중왕리가 뻘낙지로 유명하다는 점에 방점을 찍기도 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서산 뻘낙지 먹물축제에 참가해 갯벌과 인간, 생태계의 상생에 대한 내용을 대붓 퍼포먼스로 선보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도 했다. 그 일을 계기로 마을 주민들과 더욱 친밀해지고 가로림만 생태계에 대한 관심과 어민들의 삶에 대한 애환에 더욱 빠져들게 됐다.

최근 서산창작예술촌과 중왕1리, 중왕어촌계가 업무협약을 맺고 가로림만 국가해양정원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가로림만 생태환경을 지키고 마을의 새로운 지역문화 공동사업을 발굴 진행해 주민의 삶의 질 향상에 나서기로 한 것은 예술과 지역민이 어떻게 하나가 되는 지를 보여주는 모델이 되었다.

황석봉 선생이 서산에 내려와 관장직을 맡으면서 때로는 기쁘고 아쉬운 점도 많았다. 넉넉하지 못한 서산시의 예산과 인력지원 등은 앞으로 하나하나 해결해야 될 과제이다. 하지만 2012년경 독일 유수의 제약회사 회장이 직접 서산을 찾아 작품 구입 의사를 밝혔을 때를 잊지 못한다. 물론 1억 원 가까운 작품 가격에도 호감이 갔지만 제약회사 회장의 생각이 황 선생의 심금을 울렸다.

"어느 날 갑자기 독일의 저명한 제약회사 회장이 만나기를 청해 놀랐습니다. 절 만난 회장은 이제 서양의 예술작품은 그 깊이와 가치에서 동양의 예술작품에 뒤처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미술관을 새로 짓고 작품을 전시하려고 하는데 많은 관계자들이 동양 예술 작품을 구입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역시 황 선생의 작품을 직접 보니 제가 한국에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작품 가격에 구애받지 말고 영혼이 담겨있는 대작을 부탁하고 돌아갔습니다."

황 선생은 제약회사 회장의 이 같은 말에 마음이 움직여 한국현대서예를 전 세계적으로 알릴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혼신을 다해 작품을 완성했다.

또한 세계적 금융위기 속에 모든 국가들이 어려움을 겪던 1987년부터 1988년까지 일본에서 작품 전시회를 하면서 느꼈던 감흥도 잊지 못할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1987년에는 일본 오이다, 사가, 센다이, 구마모또를 비롯해 7개 지역을 순회하면서 현대서예전을 가졌고 1988년에는 히로시마, 도토리, 고베, 사뽀로를 비롯해 9개 지역을 돌며 전시회를 개최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작품을 감상하던 관객들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놀라고 어리둥절했습니다. 관객들이 하나같이 작품에서 말로는 설명하고 표현할 수 없는 기(氣)가 느껴진다는 말을 전해 듣고 저도 함께 눈시울을 붉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꿈도 꿈이고, 생시도 꿈'이라는 의미의 시몽(是夢)은 1990년대 들어 특별한 분야에 대해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깨달은 바가 있어 지은 후 사용하고 있는 그의 호이다. 시몽은 1949년에 서산 성연면에서 출생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골수염을 크게 앓았고 그 증표로 다리가 불편한 채 한 평생을 살아내고 있다. 그 후 몸이 불편해 학교를 다니기 어려워지자 부모님이 서당 선생을 집으로 초빙해 한문 공부를 시작한 후 사서삼경을 읽고 글씨를 배운 것이 계기가 돼 운명처럼 서예에 입문하게 됐다.

1972년부터 1979년까지 서예에 대한 기초 공부를 충실히 해 국전에 출품해 6회 입선을 하였고 학남 선생의 전서법과 예서법을 바탕으로, 오창석과 제백석 선생의 전각기법을 서예에 접목해 1982년부터 1984년까지 대한민국미술대전 연 3회 특선을 하면서 최연소 국전초대작가의 영광을 안게 됐다.

시몽은 중앙 화단의 서예, 전각가로 살아왔다. 세계인들이 공감하는 서예를 추구했고 대중들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서예장르가 되길 원했다. 시몽은 이를 위해 서구의 유명한 큐레이터들을 초빙해 우리의 조형으로 그들을 설득한 뒤 그들로 하여금 서예가 세계인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예술로 알려지도록 노력했다.

시몽이 서예에 미친 영향은 크고도 깊다. 특히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전통주 '백세주'와 음료 '아침햇살' 등의 브랜드명을 서예로 쓰는 작업을 하여 현대서예를 대중에게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1991년 한국서예협회를 창립해 초대 이사장을 맡은 시몽은 이 자리를 빌어 "첫째 서예의 대중화, 둘째 서예의 예술화, 셋째 서예의 세계화를 표방한다"고 전제하고 "누구나 싶게 배우고 접근 가능하며 즐길 수 있는 현대서예가 되어야 생명력을 이어갈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평론가 김찬호 교수는 "황석봉의 '백세주'는 글씨 대중화의 출발이 되었다"고 평가한 바도 있다.

시몽이 한국현대서예의 틀을 다지고 대중화에 기여한 족적은 참으로 크다. 그런 그에게도 지난 2020년은 서예 인생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과 예술의 전당이 주최한 'ㄱ의 순간'-세종에서 BTS까지 라는 주제로 열린 한글특별전에 초대작가로 선정돼 작품 전시를 한 것은 의미가 크다. 특히 '미술관에 書: 한국 근현대 서예전'은 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년 이래 처음 열리는 서예기획전이었다는 점에서 서예가들한테는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전통서예의 역사에서 현대서예라는 새로운 장르를 창시하고 개척하며 젊은 서예가와의 연결고리를 해온 시몽의 위치를 잘 보여준 전시라 할 수 있다. 또한 예술의 전당이 주최한 'ㄱ의 순간'-세종에서 BTS는 한글을 소리와 그림, 말과 글의 관계로 풀어내고자 장르를 망라한 작고·현역 작가들의 작품과 역사유물 자료 등을 선보인 전시회로 진행됐다. 서예가 중 작고 작가 1인과 현역 작가 5인 중 시몽의 작품이 전시된 점은 서산의 자랑이 되고 있다.

'꿈은 내가 믿고 머리로 상상하고 가슴으로 느끼고 손으로 쓰고 발로 행동하면 반드시 이루어 진다'란 좌우명을 갖고 평생을 살아온 시몽은 "남은 생을 지역예술의 발전과 공유, 서예를 한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켜 인간이 살아가면서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하나의 도구가 되도록 연구를 계속 하겠다"고 밝혔다.

시몽은 끝으로 "창작활동은 황폐해져가는 인간의 심성을 달래고 삶에 의미를 되찾게 하는데 있다"고 전제하고 "앞으로 서산창작예술촌을 세계적인 힐링공간으로 조성하는 한편 꿈과 희망이 이루어지는 곳으로 만들어 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대담·정리=이의형 기자 eulee@cctoday.co.kr
 

현대서예의 대가이자 캘리그래피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서산 출신 시몽 황석봉 작가가 있는 서산창작예술촌
현대서예의 대가이자 캘리그래피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서산 출신 시몽 황석봉 작가가 있는 서산창작예술촌

현대서예의 대가이자 캘리그래피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서산 출신 시몽 황석봉 작가가 있는 서산창작예술촌<사진>은 서산시의 또 다른 보물이다. 서산시 지곡면 중왕1길 87-5, 옛 부성초 중앙분교를 리모델링해 만들어진 예술촌은 대지면적 5806㎡에 건축면적은 506㎡로 1층 건물 3개동으로 구성돼 있다. 지난 2011년 11월 첫 개관한 이래 위탁과 직영을 오가다 지난 1월부터 서산문화재단에서 운영한다. 1동에는 숙소, 사무실, 전시실, 강의실 등이 있고, 2동에는 화장실과 창고, 3동은 야외작업실로 이뤄져 있다. 예술촌 밖에는 야외 조형물 '바람부는 날'을 비롯해 대형솟대, 운동장에는 폐선이 설치돼 있어 이곳이 한적한 서산의 한 어촌 마을임을 알린다. 현재는 코로나19로 인해 체험 및 강좌 등이 중단된 상태지만 황 작가의 상설작품전과 1~2달에 한번 씩 새로운 작가의 초대 전시를 하고 있다. 봄·가을에는 여러 만들기 체험을 비롯해 매주 화요일에는 서예아카데미를 운영한다. 입장료와 체험비는 무료로 운영시간은 평일과 공휴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서산=김덕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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