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수

세계 각지의 잦은 화재에 적응하는 생태계는 차이가 많아 우리 나라는 산불 후에 변화된 환경을 이용해 생육하는 식물에 대한 연구가 절실하다.

최근 환경 변화로 이상 기온이 계속되고 있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낙뢰 등에 의한 자연발생적인 산불은 거의 일어나지 않고 대부분 사람의 간섭에 의해 발생하고 있다.

산불로 인해 특수한 진화를 구축한 생물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화적지(火蹟地)에서 특징적인 식물 군락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상식이다.

산불 화적지에서 만들어진 낙엽관목인 참싸리 군락 등은 전형적인 예이다. 그 외에 지하부 영양기관의 발달로 형성되는 신갈나무 군락을 비롯, 리기다소나무·아카시아·삽주·미국자리공·닭의장풀 등 한 종이 1000개체 이상으로 군락을 형성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대규모 산불이 발생하면 조기에 복구사업을 시작, 수년 내에 유용수의 식림지로 변해 방치된 화적지가 드물다. 하지만 산불 직후는 연소에 의한 영양 염류가 해방돼 식물의 이용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지력에 영향을 주는 싸리류 등의 매토종자 발아개체가 많이 출현하는 현상은 타 화적지에서도 동일했다.

특히 지난 96년 4월 23일에 발생한 대형 산불로 3800㏊가 소실된 고성지역의 소나무림에서는 참싸리의 밀도가 커서 1평방미터의 방형구 내에 15개체 이상의 종자가 발아해 소실지의 우점종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산불의 중심온도가 섭씨 500도 전후로 극한 고온지역이 아니라면 발아가 촉진되는 발아특성이 있어서 화적지에 잘 출현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붉나무·떡갈나무·칡·개머루·산뽕나무·참억새·망초 등도 각지의 화적지에서 공통으로 출현하고 있어 이들 종도 온도 환경의 변화에 다소 강한 면을 보인다. 일본잎갈나무·은사시나무·참나무류 등은 부분적인 소실에도 재생력이 강해 방화수로의 활용성을 가능케 했다.

이와 같이 산불의 화적지에서 산불을 잘 이용해 살아남은 식물이 많아 인재(人災)에 의한 산불이 그들의 종에 생육장소를 확보해주고 있다는 뜻으로 생각해보면 화적지의 조기 복구사업에 의한 벌목과 식수 등으로 이곳저곳이 파헤쳐지고 짓밟혀져 그들의 재생에 힘을 실어주지 못하고 재식한 유목이 활착되기 전에 여름철의 우기에 접어들면 산의 붕괴 등 홍수피해를 당할 우려가 한층 고조되는 것이다.

화적지에서 유목의 식재는 주로 3·4월의 봄철을 벗어날 수 없으므로 수적인 우위보다는 경제적인 면과 입지 조건을 감안한 적절한 수목선택의 중요성과 재식 후의 관리체계의 합리성이 산세를 좌우한다는 것을 우리는 재인식하고 화적지의 관리 체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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