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숙

지난 봄 어느날 무척이나 무료한 오후였다.

평소 친하게 지내고 있던 이웃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대청 주민자치센타에서 주민들을 위해 신설한 오카리나 교실 프로그램에 나가 같이 배워보지 않겠냐는 내용이었다.

그 당시 나는 생활의 변화를 원했었다.

이제까지 남편과 아이들의 뒷바라지에만 매달려 친구들을 만나 여행을 간다거나 내가 좋아하는 어떤 일을 하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었다.

그런 생각은 나만의 시간을 보낼 적당한 취미거리를 찾아야 겠다는 것으로 발전했다.

그래서 나는 흔쾌히 동의하고 그날부터 오카리나를 배우기 시작했다.

오카리나는 이탈리아의 악기로 점토로 빚은 흙피리다.

처음 이것을 간접으로나마 접해본 건 몇년 전 '타이타닉'이라는 영화를 통해서였다.

배가 침몰해 남녀주인공이 차가운 바다 한가운데서 죽어갈 때 구슬프게 흘러나왔던 소리를 내던 그 악기.

그 당시는 소리에 매료돼 어떤 악기에서 저런 소리가 나오나 마냥 신기하다는 막연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인연을 맺게된 오카리나는 햇살이 따사했던 봄날과 시원한 소나기가 퍼붓던 여름날을 지나 이제 귀뚜라미 소리가 가까운 가을날에도 나와 함께 하고 있다.

거실 한쪽에 악보와 함께 두었다가 청소를 마친 후 한 번,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난 후 또 한 번, 특별히 시간을 내지는 못해도 자투리 시간 내 손엔 어김없이 오카리나가 쥐어져 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황토빛의 작은 악기, 흙으로 빚어서 그런지 소리 또한 은은해 듣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얼마 후에는 주민자치센타프로그램 발표회가 있다. 봄부터 시작된 회원들의 오카리나 연습은 더욱 바빠지게 됐다.

이번 발표회는 이 가을날 나를 더욱 행복하고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 같다.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한 해가 가면서 사람들은 일상에 몸과 마음을 맡긴 채 나이 먹는다는 핑계로 하루하루 자신의 꿈과 이별하며 살아간다.

마음이 평온해지는 가을을 맞아 지금 당장 꼭 큰 일이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해보는 뜻깊은 날을 모두가 맞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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