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찬회 중소기업중앙회 대전충남본부장

“사자가 토끼를 잡아먹다 못해 토끼가 먹는 풀까지 먹어 치우려 한다.”

이는 몇 년 전 중소기업사업영역 보호와 관련한 정책포럼에서 무차별적 생계형 시장진입 등 대기업의 약탈적 행태를 비난하는 어느 소상공인 대표의 격앙된 목소리 중 일부다. 중소기업적합업종제도는 2011년 이러한 대기업의 무차별적 시장진입으로부터 영세 소상공인 및 중소기업의 생계형 사업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만들어진 제도다.

물론 제도도입과 운영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대기업은 시장경제를 거스르는 대표적 규제로 치부한 채 줄기차게 중소기업적합업종제도의 폐지를 주장해 오고 있다.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은 생존권 확보를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써 제도 확대와 대기업의 합의 위반에 따른 이행력 확보방안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얼마 전 중소기업중앙회가 만 20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중소기업적합업종제도 대국민 인식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90.3%가 우리사회에서 적합업종제도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79.3%는 적합업종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세부절차 및 이행수단을 법률로 명기해야 한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즉, 소상공인·중소기업이 아닌 일반국민들마저 대부분이 법적 강제력이 담보된 적합업종제도가 필요하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또한 20대 국회 개원과 더불어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중소기업중소상인 적합업종 보호에 관한 특별법’을 발의했다.

아마도 다시 한번 대·중소기업간 시장경제에 대한 경제학적 담론 제기가 불가피할 것 같다. ‘갑을’로 대변되는 대·중소기업간의 고질적 거래관계들도 거론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앞으로 법제화 논의과정에서 이러한 경제학적, 산업구조적 논의와 함께 꼭 짚고 가야할 것은 제도 도입 당시의 그 취지와 실체다. 먼저 중소기업적합업종의 선정기준에 관한 것이다. 중소기업적합업종은 그 명칭내에 이미 ‘중소기업적합’이라는 범위와 한계를 명확히 해 그 선정기준으로 삼고 있다. 해당 품목을 생산하거나 해당 업종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효율적인 기업규모가 소상공인·중소기업이라는 것이다.

이런 기준에 의해 두부, 단무지, 도시락, 문구소매업, 제과점, 음식점 등 소규모 생계형 업종 및 품목이 지정돼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사회적 합의와 관련된 것이다. 어떤 경우든 자발성에 근거한 합의가 이루어진 뒤 이를 위반했을 경우에는 제재 및 피해구제가 뒤따르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미 합의한 내용의 이행력 확보를 거부함은 앞으로 합의내용을 성실히 이행하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라고 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중소기업적합업종은 대·중소기업간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다. 중견기업까지 포함하는 시장지배적사업자와의 문제다. 즉 독점의 폐해 예방과 경제생태계의 다양성 확보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키지 않는 합의, 이행력없는 제도는 액자속의 구호에 불과하다. 중소기업적합업종제도의 새로운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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