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구 계룡건설 명예회장

새날이 밝아왔다.

새해 을유년(乙酉年)은 닭의 해이고 새벽 시간을 알려 주는 새 나라 희망의 해이다. 지난해 갑신년(甲申年)은 원숭이해라 혼돈(混沌)과 불확실(不確實)의 해였다. 지긋지긋한 한 해를 우리는 참고 견디며 보낸 터다.

60년 전(還甲)을 회고해 보자.

1갑자(甲子) 전의 갑신년(1944년)은 태평양 전쟁의 말기였다. 온 강토의 소나무와 대나무가 거개가 죽어서 산하가 붉게 된 해이다.

젊은이는 온통 징병으로 끌려가 말기를 재촉하는 일본 제국의 희생양이 되었고, 중장년은 징용으로 끌려가 강제 노역에 시달리며 감옥살이보다 더한 노예생활을 했다. 젊은 처녀는 소위 정신대로 끌려가 일본군의 성적 노리개가 되었다.

농민들은 소출의 70% 이상을 소위 공출(供出)이라는 미명하에 강제 수탈당하여 초근목피로 세상을 한탄하며 생을 이어 갔다. 아이들은 창씨개명(創氏改名)으로 일본 이름을 써야 했고 일본말만 쓰도록 강요당했으며 어쩌다 우리말을 쓰면 혹독한 매질을 당했다.

그뿐만 아니라 매일 아침 동방요배(東方遙拜-일본 동경에 있는 천황에게 드리는 절)를 해야 했고 소홀히 하다 들키면 부정선인(不貞鮮人)으로 낙인 찍혀 학업 점수를 받지 못했다.

나는 이 시기에 초등학교 4학년을 다녔다. 어린 나이였지만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말세(末世)론을 피부로 느꼈으며 새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다음 해인 60년 전 을유년(1945년)에 태평양 전쟁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종식되고 우리나라는 꿈에도 그리던 해방이 되었다.

우리 긴 역사상 순식간에 세상이 바뀐 전무후무한 때를 맞이했던 것이다.

새 세상의 소식을 소리 높이 알려 주는 닭의 울음을 들은 것은 을유년 8월 15일이다. 그 을유년의 감격과 희망의 해가 바뀌어 60년 만에 회귀한 것이 올해의 희망이 아닌가.

참고로 2갑자(甲子·120년) 전의 갑신년과 을유년을 회고해 보자. 역사는 매년 변해 가지만 60년 주기로 회귀하면서 변한다고 동양철학은 내다보고 있다.

1884년인 갑신년은 갑신정변이 일어난 해이다. 세계의 문물이 물밀듯이 밀려 들어오고 있음에도 대원군은 쇄국정책을 고수하였는 바 이에 반대하고 개혁 개방정책을 추구하기 위한 쿠데타였다.

거사는 삼일천하로 끝났지만 그 여파는 우리나라에 열강들을 무력으로 끌어들이는 촉매가 되었고 정부의 진공상태를 빌미로 해서 일본, 청국, 러시아, 미국, 프랑스, 영국 등 열강의 각축장이 되어 결국 국권을 일본에 빼앗기는 원인을 제공했던 것이다.

천하대국, 잠자는 호랑이로 군림하던 중국(청나라)이 열강의 노리개감같이 무력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도 그해부터다. 베트남 지배권을 놓고 프랑스와 청국이 전쟁을 일으킨 해이고 이 전쟁은 다음해 을유년에 프랑스의 승전으로 마감되었다.

1885년(乙酉)에는 일본 군대의 주둔을 인정하는 한성조약 체결, 영국군 해군의 거문도 점령, 청나라 원세계의 조선통상사절단 입국, 일본과 청나라의 힘의 각축 끝에 잠정적으로 조선 주둔 일·청 양국의 철수와 조선·러시아 통상조약의 체결 등 조선 말기의 세계 열강 각축의 바둑판에서의 포석전이 시작된 한 해가 아니었던가.

올해는 통일의 물꼬가 트이고 안보 문제가 해결되고 바닥을 기고 있는 경제와 민생이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는 한 해가 되어 주리라 기대하고 있다.

60년 전 해방을 쟁취한 우리나라는 또다시 혼란과 혼돈으로 갈피를 잡지 못했었다. 국민들은 새 나라 건설이란 희망으로 뭉쳤지만 지도자들은 이를 수용하지 못했다. 격변기를 맞이한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하고 이끌어 갈 지도력이 발휘되지 못했다.

정치인은 좌익, 우익으로 나뉘어 이념 전쟁만 하고 북쪽의 김일성과 남쪽의 이승만의 타협할 줄 모르는 싸움으로 남북이 각기 다른 국가, 색깔이 전혀 다른 정부를 수립하고 동족상쟁의 6·25 전쟁을 치르곤 오늘의 대결 시대에 이르렀다.?

해방의 감격과 희망을 잃고 어렵게 지내온 지날 세월, 또다시 그 을유년이 성큼 다가온 이 해는 지난 60년의 전철을 밟지 않는 새로운 리더십과 국민 통합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120년 전 우리나라는 서방 세계의 문물을 효과적으로 선별해서 받아들이지 못하고 무조건적 쇄국을 했기 때문에 치욕적이고 낙후한 한 세기를 감내해 오지 않았는가.

지금 우리는 모든 지식, 정보, 능력(경험)을 충분히 갖춘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호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것이 을유년 희망으로 열려야 한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