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공 민병헌 본부장 VS 토공 성도용 지사장

▲ 주공 대전충남지역본부 민병헌 본부장 /사진 = 김대환 기자
국내 공기업 건축 및 토목 분야 중에도 '빅리거'가 있다.

건축물 구조 분야에서 공직 생활의 절반을 보내며 건축 분야 베테랑이 된 대한주택공사 대전충남지역본부 민병헌(53) 본부장과 인생의 반은 토목 분야와 함께한 한국토지공사 대전충남지사 성도용(52) 지사장이 그 주인공.

국내에서 웬만한 건축 구조물이나 토목 공사 및 설계 등의 분야에 이들의 땀방울이 묻어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그만큼 화려했을 법한 그들만의 경력도 짐작이 간다. 국내 100만호의 임대주택 건설은 물론 택지 개발 등의 신도시 사업은 모두 이들 손을 거쳤다. 이마저도 모자라 북한(?)까지 넘나들며 공단 사업에도 참여했다.

지난 95년 6월 29일, 510여명의 사상자를 낸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당시 민 본부장이 개입(?)돼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일반인들은 극히 드물 것이다.

민 본부장은 건축 구조물과 관련, 당시 주공 내에서 전국 최정예 5인으로 구성된 '구조 붕괴 원인규명 검찰 조사반'이란 특별 조사팀의 팀장으로 붕괴 사고 현장에 급파됐다.

"아수라장이 돼 버린 사고 현장에서 조사반원들은 4개월여 동안 현장을 누비며 설계·시공·관리 등에 대한 총체적인 붕괴 원인을 파헤쳤다"며 "원인 규명 작업을 통해 건축 구조물에 대한 안전 관리 등에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북한의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유신체제에 대한 찬반 국민투표 및 양정모 선수의 올림픽 첫 금메달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로 사회 분위기가 어수선하던 지난 76년 주택공사에 첫발을 디뎠다. 이후 구조부장, 건축설계처장, 연구개발실장 등 주공 내 요직만 두루 거친 건축 설계 및 구조 분야 '빅리거'다.

하지만 탄탄대로의 인생만 펼쳐진 것은 아니다. 입사 후 초급 간부인 계장 승진 시험에 3년 연속 고배를 마시며 인생의 첫 좌절과 회의감마저 느꼈다고 한다.

"입사 초기에는 다른 동기생들에 비해 내부 융화가 다소 뒤처졌던 게 사실"이라며 "인내하는 삶은 물론 지금은 제법 큰 사업으로 자리를 잡은 동기생의 뜨거운 우정이 아니었다면 슬럼프에서 쉽게 헤어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통을 참고 어려운 세월을 인내하는 지혜를 배우지 않았더라면 오늘날의 성취와 보람을 맛볼 수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지난 82년부터 시작된 국내 최초의 '을지로 재개발' 사업에도 참여, 16·17지구의 설계부터 준공까지 5년간의 청춘도 바쳤다. 이 재개발 사업 과정에서 당시 입원 중이던 그는 병원과 현장을 오가며 업무를 하기도 했다.

그는 여전히 목조 건축물인 고택(古宅)이나 현대 건축물 사이의 메커니즘 분석에도 여념이 없다. 그래서 디지털카메라를 늘 휴대하며 관심 있는 건축물들을 사진으로 기록한다. 이를 토대로 직원들에게 학습도 실시한다.

이런 그의 취미활동은 지난 96년 10월경, 사내 모임인 '전미일'이란 동호회로 탄생했다. '전통과 미래의 꿈을 일구는 모임'. 늘 전년도에 답사하며 찍은 사진을 그 이듬해 달력으로 제작해 사내에 배포하는 이 동호회는 이젠 120여명에 달하는 사내에서 가장 큰 조직(?)이 됐다. 국내 문화유적지는 안 가 본 데가 없단다.

▲ 토공 대전충남지사 성도용 지사장 /사진 = 김대환 기자
공직생활로 치자면 민 본부장보다 4년여 먼저 시작한 성 지사장은 지금은 건설교통부로 개편된 72년 당시 건설부에 첫발을 들였다. 이후 80년 3월, 토지공사에 공채로 재입사한 후 단지설계처장, 대외사업단장, 시설사업단장 등 탄탄대로의 길을 걸었다. 입사 동기생들 가운데 가장 먼저 3년가량 빨리 진급하는 초고속 승진도 맛봤다.

입사 이래 성 지사장은 개발 사업 계획 업무에 정평이 나 있다. 그래서 토목 분야 최고의 '빅리거'라는 평도 무색할 정도다.

현장경험만 풍부한 건 아니다. 지난 95년 재직 중 토목시공 및 도로·공항 등 2개의 기술사도 취득했다. 그래서인지 "같이 일할 때면 더욱 부끄럽다"고 한 직원은 귀띔했다.

회사 내부 기술업무지침서인 설계기준 마련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업무에 관한 한 그는 '최고 중 단연 일인자'다.

사실상 국내 최초의 택지개발 사업인 대전 둔산지구를 계획부터 설계, 공사 감독 등 사업의 전 과정을 진두지휘했다.???

또 지난 93년 엑스포박람회 때 과학공원 및 엑스포아파트 부지 등의 개발 사업을 맡아 당시 보기 드문 400억원의 수익을 창출, 전액을 대전시 과학재단에 기증하기도 했다.

이런 경력도 모자라 김대중 정권 시절에는 대외사업단장으로 재직하며 북한을 넘나들기를 5차례. 개성공단 개발을 위해 중국·러시아·베트남 등 해외 개발 사업에서 축적한 노하우를 북한에 설득, 결국 결실을 맺는다.

성 지사장은 직원들에게 늘 강조한다. "학교에서 배운 것은 사회 진출을 위한 토대였다면, 사회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자기 개발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그는 늘 "직장 외 학원 등에서 배우는 과외공부만이 자기 개발이 아니라 직장 내에서의 끊임없는 학습도 자기 개발의 연장선"이라고 강조한다.

생(生)의 어떤 인연 때문인지, 민 본부장과 성 지사장은 지난 1월 이틀 차이로 주공 본부와 토공 지사의 수장으로 각각 부임했다.

택지와 산업단지 등의 개발 사업을 비롯해 국토의 균형발전 및 국가정책 사업에 대한 소명의식 차원에서 이들 양 기관은 같은 운명을 타고 났다.

대전 유성 출신인 민 본부장과 연기군 금남면이 고향인 성 지사장 모두 충청도 출신이란 점 역시 굳이 단짝으로 연결시키지 않아도 되는 이유다. 그러나 이들은 이미 학창시절 때부터 인연이 닿는다. 고교·대학 2년 선후배 지간인 이들은 민 본부장이 성 지사장의 대전공전 및 한양대 선배.

이들은 또 마치 드라마(?) 같은 끈끈한 가족 관계도 형성돼 있다. 성 지사장의 조카가 민 본부장의 부인이기 때문.

"결혼 후 조카가 산다는 집에 놀러 갔더니, 글쎄 학교 선배님이 제 조카사위가 돼 있더라구요. 그 뒤론 민 본부장님을 마냥 이웃집 형님처럼 생각하게 됐죠"라며 소탈하게 웃는다. 현재 거주하는 집도 걸어서 5분거리의 지척간이란다.

그런데 민 본부장의 부인은 또 성 지사장의 대전공전 1년 선배다. 이러저래 성 지사장은 인척이라는 명함을 제외하고는 모두 민 본부장 내외에게 학교 후배 신세(?)를 면치 못한다.

자녀들도 아버지를 닮았다. 민 본부장의 차녀도 건축과 4학년에 재학 중이다. 성 지사장의 장남 역시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한양대 토목과에 재학 중이다.

그래서 이들은 서로 '닮은꼴'이자 '막역지간(莫逆之間)'이다.

성 지사장은 "사실 일 자체가 공부"라며 "부단한 노력과 인내하는 생활이 내 인생 최대의 비료"라고 말한다.

민 본부장은 향후 은퇴 후 물러나는 날, 평소 배워 둔 문화유적 답사를 통한 여행 및 건축양식 등의 연구와 함께 가족들에게 서비스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지난 30여년간 휴일을 잊고 지내온 세월, 그 세월을 가족들에게 돌려주고 싶다는 것이 민 본부장의 바람이다.

민병헌(閔丙憲) 대한주택공사 대전충남지역본부장 프로필

▲생년월일 : 1952. 1. 7

▲출생 : 대전시 유성구

▲출신학교 : 대전공업전문학교, 한양대 건축공학과

▲주요 경력

- 76.2 : 대한주택공사 입사

- 90.1 : 건축설계처 건축구조부장

- 98.1 : 건축설계처장

- 00.7 : 기술계획처장

- 02.6 : 연구개발실장

-03.1:서울대 공기업 고위관리자 과정

- 04.1.13 : 대전충남지역본부장(현)

성도용(成都鏞) 한국토지공사 대전충남지사장 프로필

▲생년월일 : 1953. 11. 18

▲출생 : 충남 연기군 금남면 달전리 265

▲출신학교 : 한양대 토목공학과,?대전대 토목공학과 석사

▲주요 경력

- 80.3 : 한국토지공사 입사

- 99.11 : 단지설계처장

- 02.1 : 대외사업단장

- 03.1 : 시설사업처장

- 04.1 : 대전충남지사장 (현)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