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넷 그녀 때문에 현장이 부드러워졌다

▲ 거친 남성들로 메워지고 있는 공사 현장에서 자신의 '끼'를 마음껏 발휘하고 있는 여성 건축기사 송지은씨. /사진=김대환
성들도 버거워하는 건설 현장이 그녀에게는 삶의 또 다른 동반자이자 전쟁터다.

"노가다(?)하기 힘들지 않느냐?"는 주위의 고정관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처음엔 주위의 시선은 물론 일 자체가 너무도 견디기 힘이 들었다"면서도 이젠 제법 사회 초년생의 '티'를 벗은 듯하다.

거친 남성들로 메워지고 있는 공사 현장에서 자신의 '끼'를 마음껏 발휘하고 있는 여성 건축기사 송지은(24)씨.

여성으로서 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보기 드문 건축기사인 송씨는 건설 현장에서 모든 공정(工程)은 물론 인부들까지 직접 챙긴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업무에선? 꼼꼼함으로 발휘되는 장점도 터득했다.

대학 졸업을 6개월여 앞둔 2003년 8월, 건축공학과 졸업 동기생 120여명 가운데 건축 기사 자격증을 취득한 유일한 여성이라며 뿌듯해했다. 이듬해 봄, 졸업과 동시에 현장에 뛰어든 곳은 서구 둔산동의 한 주상복합 아파트 건설 현장.

오전 5시30분경, 남들보다 조금 일찍 하루를 여는 그녀는 7시까지 현장에 도착한 뒤 1시간가량 인부들의 인원 파악을 시작으로 업무를 시작한다.

공정표 작성, 도면 검토, 품질 검사, 근로자 관리 등등…. 현장에서 작업지시를 내리는 모습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한번은 인부들이 설계도면과 다르게 일하는 모습이 자주 발견되기에 소위 '오야지'라고 부르는 '십장'을 인부들이 보는 앞에서 이론을 무기 삼아 호되게 꾸짖은 적이 있죠. 그 뒤론 '어이, 미스 송' 하고 부르던 호칭마저 없어졌드라고요. 이젠 인부들과 자존심으로 맞서기보다는 일을 효율적으로 쉽게 할 수 있도록 달래가며 직접 부딪히지 않아요."

건설 현장 경험이 1년이 채 안 되지만 이미 손 마디마디가 남성들과 다름없이 거칠어졌다. 직업적 특성상 손이 많이 트겠다고 말하자, "그래도 손톱에 때가 끼었을까 봐 가끔은 창피해요"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아직은 같은 또래의 여성들과 다르지 않은 수줍음이 발견된다.

그래도 현장 특성상 드센 남성들과 상대하다 보니 주량은 어느새 소주 2병 반 정도까지 먹어야 겨우(?) 취기가 온단다.

고교 시절도 그랬고, 건축공학과 입학 당시에도 멋진 건축물을 설계하는 건축사가 꿈이었다. 하지만 대학 2학년 여름방학 때 45일간 '보따리' 하나 짊어지고 떠난 유럽 배낭여행 기간 중세 교회 건축물들을 보면서 건설 시공에 매력을 느껴 건축기사로 '팔자'를 바꾸길 잘했다며 자부심이 대단하다.

"처음 현장에 발령받은 후 골조공사 때 4층 높이의 콘크리트 공사 구조물들 사이를 계단과 철근에 의지해 옮겨 다닐 땐 너무 무서웠어요. 하지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현장은 내가 지킨다'고 몇 번이고 다짐하면서 이젠 익숙해졌다"고 말한다.

"준비 하지 않으면 도전의 기회도 없다"고 말하는 그녀는 최근 사회적 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는 청년 실업률과 관련해 따끔한 충고도 한마디 던졌다.

"일자리가 없어 고학력 실업률이 높아지는 게 아니라 힘들고 조금이라도 어려우면 쉽게 포기하거나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는 젊은층들의 의식부터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건축기사 한 번 해 보겠다고 할 때 만류하지 않고 적극 지원해 준 부모님이 늘 감사하다는 송 기사는 업그레이드된 건축기술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국내 굴지의 현장에서 소장 한 번 해 보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다.

일부러 인터넷 등을 통해 소위 노가다 관련 용어들도 찾아가며 배우기도 했다.

170㎝의 시원스러운 신장에 여성 특유의 가녀린 몸매지만 그녀만의 '톡톡 튀는' 독특한 매력이 뿜어져 나온다.

"재미있으니까 하죠. 현장은 일요일이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어떤 환경 속에서도 당황하는 일이 없도록 늘 준비하는 자세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침착함과 겸허함을 갖추기 위해 건축업무의 수련과 인간적 연마를 통한 자기 중심이 확립되도록 노력 중"이라고 말하는 모습에서 다소 성숙미도 느껴진다.

아침 일찍, 그것도 공사 분진 속에서 일하는 직업적 특성상 늘 기초화장조차 하지 못한다는 그녀는 인터뷰가 있던 날, 모처럼 화장하고 나왔다며 여성스러운 모습도 감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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