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으로 일궈 신지식으로 무장한다

김치만큼이나 우리에게 익숙한 식품이 단무지다.단무지가 빠진 김밥은 상상할 수 조차 없거니와 단무지가 배달 안된 자장면은 왠지 먹기 싫다.하지만 유독 단무지 업계 만큼은 유명 브랜드가 없다.음식으로서는 일종 '천대'를 받고 있는 셈이다.

이 와중에도 최고는 있는 법. 단무지 부분 ISO 9002 국제품질인증을 획득하고 대지 9000평, 건평 3500평의 대규모 공장에 최첨단시설로 단무지를 생산하고 있는 ㈜일미농수산이 바로 그곳이다.

▲ 공장 내부를 둘러본 오영철·일두 부자가 미래를 향한 밝은 웃음을 지어보이며 나란히 섰다. /사진=신현종 기자
충남 연기군에 위치한 생산공장에서 만난 오영철 회장에게 '아들이 어디서 근무하느냐'고 묻기가 무섭게 오 대리 호출 명령이 떨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청년이 조심스럽게 오 회장의 사무실로 들어왔다.

아들 오일두(30)씨.

자신을 ㈜일미농수산 마케팅사업부 대리라고 소개한 오씨는 이제 겨우 입사 2년된 신출내기.

현재 연세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으며 대기업의 각종 프로젝트에도 참여할 정도의 재원이지만 아버지가 평생을 바쳐 만든 단무지 공장을 키워보겠다며 자진해 입사를 했다.

이렇게 해서 오씨 집안의 '단무지 가업'은 시작됐지만 여느 가업을 잇는 부자들과 이들을 비교하기에는 맞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가업을 잇는다면 선대의 전통과 정신을 고집스럽게 지켜나가는 것을 연상하기 쉽지만 이들 오씨 부자는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한다.

아버지가 23년 전 도산된 김치공장의 종업원들을 도와주기 위해 절임식품사업에 뛰어들어 손끝에 치자물 배이도록 단무지를 담그며 일했다면, 아들은 다양해진 소비자의 입맛을 따라잡기 위해 신지식으로 중무장하고 아버지가 일궈낸 사업에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오 대리는 "석사과정을 밟으며 대형 프로젝트 사업에서 뛰어보기도 했지만 기획보다는 현장에서 실행하는 것이 적성에 맞는다"며 "비록 아버지 회사가 중소기업이지만 현장에서 몸을 부딪히며 하나하나 성취해 가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이 같은 말을 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 오 회장은 내심 뿌듯한 모습이었다.

오 회장은 "나름대로 생각도 해보고 아들과 많은 얘기를 나눠보았다"며 "앞으로의 경영은 프로그램을 갖고 해야 하기 때문에 아들이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창업주로서 그리고 아버지로서 끊임없는 변화를 요구하는 업계의 생리와 아들의 신경영 철학을 인정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아무리 부자지간이라도 매사에 손발이 맞을 수는 없을 일이다.

이들 부자 역시 때때로 생각의 벽에 부딪히는 경우는 어쩔 수 없다.

아버지 시절의 사업 패러다임이 바로 바로 효과가 나타나는 '관리 중심'이었다면 아들은 무형의 자산에 장기적으로 투자하는 것을 추구한다.

오 대리는 "이 때문에 사주와 종업원으로서, 때로는 아버지와 아들로서 의견충돌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 회사에 아버지와 아들이 회장과 대리로 근무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다"라며 그동안의 숨은 속내를 털어놨다.

"회사 내에서 매 순간 평가를 받고 있어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 없다"며 "내가 사주 아들이기 때문에 실수를 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스스로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말에 아버지 오 회장은 "이미 알고 있어. 하지만 고통과의 싸움도 공부야"라며 아들을 다독거렸다.

인터뷰 내내 냉냉할 정도로 거리를 유지하던 이들에게 부자의 관계(?)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단무지 생산현장을 둘러보기 위해 위생복을 입고 나서는 순간이었다.

한사코 됐다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위생복을 입기 좋게 펼쳐 입혀 주었다.

공장을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 아들인 오 대리에게 회사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싶은지를 물었다.

"절임식품이라는 것은 생산·소비의 주체가 뚜렷하지 않다. 즉 브랜드가 존재하지 않는다"라며 "앞으로 인프라를 구축해 생산자는 주인의식을 갖고 소비자는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다"

오 대리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거침없이 얘기했다.

그는 이어 "좀 더 사업을 배우고 나면 중소형급 프렌차이즈 시장에도 도전해 보고 싶다"는 야무진 꿈도 덧붙였다.

"고생을 하며 얻은 지식과 학문을 통해 얻은 지식은 엄연히 차이가 있어. 성공은 현장에 있는 것이야."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다.

?◆오영철 회장은

-1945년생

-연세대 산업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 수료

-단국대·서강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수료 등

-㈜일미농수산 회장(현)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모범 경영인상 수상

-대전지방국세청 모범납세자 표창

-농림수산부 장관상, 연기군민대상 수상 등

◆오일두 대리는

-1974년생

-중앙대학교 심리학과 졸업

-연세대학교 일반대학원 경영학과 석사과정 (마케팅 전공) 졸업

-연세대학교 일반대학원 경영학과 박사 과정

-일미농수산 재직

-국민은행 주최 전국대학원생 논문현상 공모?우수상(2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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