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의수 대전시 교통국장

어느새 한 해가 서산마루에 걸려 있네요. 절기상으로 소설(小雪)이 지났지만 요즈음 날씨가 그리 춥지는 않은 것같아 다행입니다. 이렇게 글로 안부나누는 게 꽤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형! 사람들은 이맘때 잎을 떨구고 앙상하게 홀로 서 있는 나뭇가지를 보면서 스산함을 느끼고 이를 소재로 많은 글들을 쓰곤 하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형님! 올해의 겨울나무가 지나온 다른 해에 보이던 것보다 더욱 딱해 보이고 을씨년스러워 보이는 게 무슨 까닭일까요.

한결같이 장사가 안 된다고 한숨짓는 재래시장의 상인들 때문일까요. 아니면 무, 배추값이 너무 헐값이어서 다시 밭을 갈아 엎어야 하는 답답한 농사 때문인가요.

이런 것들이 아니면 이 세상 삶이 너무 힘겨웁다고 자기의 자식을 천국으로 먼저 보내고 부모도 뒤따라 갔다는 뉴스를 보면서 추스르기 힘든 감정 때문일까요.

형! 아직 본격적인 추위가 오려면 멀었고 오늘 날씨도 따스한데 벌써부터 으쓱으쓱 추워지고 몸이 움츠러드는 것은 제가 감기에 걸린 때문이겠지요.

지난 50∼60년대 가난을 통칭하는 '보릿고개' 시절에는 입을 옷이 없어 무척 추웠지요, 그래서 우리 아버지와 형들은 산에 가서 나무를 베어다가 아랫목을 데우고 이불 속에 몸을 디밀어 추위를 이기곤 했던 일을 기억하시지요.

지금은 그동안 '잘살아 보자'고 몸이 으스러지는 고통도 이겨온 덕분에 두툼한 오리털파카가 있는데도 추위를 느끼는 것은 마음이 스산한 때문인가요?

형! 우리는 지나온 30∼40년 세월을 참으로 잘도 견뎌 왔지요. 식량자급, 산업개발, 수출입국, 새마을운동, 그리고 민주화운동.

우리는 이런 말들을 일상의 화두로 하면서 여기까지 성공시켜 온 저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래서 말씀인데요. 형! 이제 우리 이웃들이 다시 힘과 용기를 갖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보십시다.

비록 우리가 나이들었다고 해서 젊은이들에게 286, 386 수준이라고 업신여김을 받고 있다 해도 우리는 그들에 비해 어려움을 참을 줄 아는 끈기가 있고 한강의 기적을 이룩해 낸 경륜이 있으며, 절미통에 쌀 한줌씩을 모아가며 자식 학교 보내고 논마지기를 마련할 수 있게 한 절약정신이 몸에 배어 있지 않습니까?

그것 뿐인가요, 우리는 어른을 공경으로 섬기는 아름다운 풍습도 면면히 이어 왔고 어려운 이웃을 내 가족같이 살펴주는 넉넉한 인심도 가지고 살아왔지요.

또, 비록 힘들고 어렵더라도 가끔 기분이 날 때면 막걸리 주전자를 젓가락으로 두드리며 목청을 키워 한자락 뽑을 줄 아는 여유(?)도 있었지요.

형! 설혹 지금 힘들어 하는 이웃 중에 살아가려다 절망하는 이가 있다면 격려하면서 역경을 견뎌온 경륜을 빌려줌으로써 이 사회를 밝게, 명랑하게, 희망 가득 넘치게 만들도록 하는 밑거름이 되어 줍시다.

앙상한 나뭇가지가 추위를 느끼게 합니다만 그래도 겨울이 지나고 나면 다시 새싹이 힘차게 피어나고 열매 맺는 때가 반드시 올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깨닫도록 하십시다.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미래를 활짝 열어 갈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북돋워 줍시다.

형! 올겨울 혹독한 추위가 오더라고 그 옛날 함께하던 은행동 골목 막걸리집에 가서 상다리를 두드리며 우리들의 희망가를 목청 터지게 불러봅시다.

추위에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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