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사와 '검은 공생' 적발…비리 규명 미흡·망신주기 수사 지적도
이번 주 정준양 전 회장 신병처리 결정 전망

올 3월 포스코건설 압수수색을 신호탄으로 시작된 포스코 비리 수사가 8개월 만에 종착역에 다다랐다.

1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조상준 부장검사)는 이르면 이번주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의 신병 처리를 결정하고 사실상 포스코 수사를 종결할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그동안 포스코건설을 비롯한 포스코 계열사와 거래 업체의 '검은 공생' 을 파헤쳤지만, 그룹 차원의 비리 전모를 밝히는 데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핵심 인물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고비마다 수사동력을 잃었고 장기간 '먼지떨이식' 수사를 했다는 비판까지 직면하면서 포스코 수사는 검찰에도 상처를 남긴 사건이 됐다.

포스코 수사는 포스코건설의 100억원대 해외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촉발됐다. 3월13일 포스코건설을 전격 압수수색한 검찰 수사는 한동안 순항했다.

비자금 용처를 쫓는 과정에서 포스코건설 토목사업본부 전·현직 임원들이 해외 건설사업 발주 대가로 협력사에서 금품을 챙긴 '뒷돈 범죄'가 줄줄이 드러났다. 관련자 대부분은 구속기소됐다.

검찰 수사는 4월 들어 포스코건설에 머물지 않고 그룹 차원의 비자금 조성 의혹으로 확대됐다. 포스코와 거래하던 선재 제조업체 코스틸이 첫 타깃이었다. 박재천 코스틸 회장은 200억원대의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5월 들어서는 그룹 비리에 연루된 또 다른 업체인 세화엠피 전정도 회장을 겨냥한 수사가 본격화했다. 전 회장은 600억원대의 포스코플랜텍 자금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곧이어 동양종합건설이 사정권에 들었다. 올 7월 동양종건 본사 등 6곳을 압수수색한 검찰은 배임·횡령 혐의로 이 회사 배성로 회장을 피의자로 조사했다.

하지만 영장 기각이 검찰의 발목을 잡았다. 포스코건설 비자금 사건과 그룹 차원의 비리가 어떻게 연계되는지를 알아낼 핵심 인물로 여겨지던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의 구속영장은 5월과 7월 두 차례나 기각됐다.

뒤이어 8월에 배 회장의 구속영장까지 기각되면서 수사는 방향을 잃었다.

영장 기각은 정 전 부회장과 배 회장을 구속수사할 정도의 입증자료를 갖추지 못했다는 의미여서 검찰은 '역풍'에 시달렸다.

4∼5개월 특정 기업을 샅샅이 뒤지고도 핵심 피의자들을 구속수사할 명분을 법원에서 인정받지 못했다면 무리한 수사가 아니냐는 목소리가 재계에서 터져 나왔다.

검찰은 그룹 비리의 정점으로 지목한 정준양 전 회장을 직접 겨냥해 수사를 이어나갔다.

특히 포스코그룹이 플랜트업체 성진지오텍의 지분을 시세의 배에 가까운 가격으로 사들였다는 의혹에 정 전 회장이 깊이 개입했다고 보고 수사를 벌였다.

2010년 이뤄진 포스코와 성진지오텍의 지분 거래로 성진지오텍 최대주주였던 전정도 세화엠피 회장은 막대한 시세차익을 남겼다.

정준양 전 회장의 소환을 앞둔 8월 말께 검찰은 돌파구를 찾았다. 이상득 전 의원 등 포항에 지역 기반을 둔 유력 정치인들을 배후로 둔 몇몇 협력사들이 포스코로부터 일감을 특혜수주했다는 첩보였다.

검찰은 9월 들어 이 전 의원의 측근 박모씨가 실소유주인 티엠테크 등 일감 특혜수주 의혹을 받는 업체들을 잇달아 압수수색했다.

이 전 의원의 요청으로 측근 업체에 포스코가 일감을 몰아준 정황이 밝혀졌다.

정 전 회장은 5차례나 소환 조사를 받았고, 지난달 말 이 전 의원은 건강상태 등을 고려해 제3자 뇌물수수죄로 불구속기소됐다.

검찰은 조만간 정 전 회장의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아울러 정동화 전 부회장과 배성로 회장 등 아직 사법처리하지 않은 주요 피의자의 신병처리 방향도 함께 결정한다.

포스코 비리 사건의 관련자들은 이르면 이번 주, 늦어도 이달 중순께 사법처리 향배가 모두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8개월 가까이 진행된 포스코 비리 수사는 포스코건설을 비롯한 계열사들이 일감 발주 등을 둘러싸고 협력사와 부정한 금품거래를 한 사실을 적발하는 성과를 냈다.

'일감 특혜발주'라는 뇌물 고리로 정치권과 포스코그룹이 유착한 사실도 밝혀냈다. '국민기업 포스코의 정상화'라는 수사 목표를 어느 정도는 달성한 셈이다.

정 전 회장이 그룹 최고경영자(CEO)로 선임되는 과정에 이 전 의원이 개입하는 등 그룹 경영이 정치권에 좌지우지됐다는 점도 드러났다.

하지만 그룹 차원의 비자금 조성 등 애초 의혹의 핵심을 이루던 사안들은 속 시원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계열사나 협력사에서 조성된 비자금이 그룹으로 흘러가고서 정관계 등에 뿌려졌다는 의혹은 수사가 끝나도 풀리지 않을 공산이 커 보인다.

성진지오텍 주식 고가 매수 등 이미 드러난 비리도 그룹 차원에서 어떤 의사결정이 있었는지도 의문점으로 남아 있다.

정동화 전 부회장이나 배성로 회장의 영장기각으로 수사가 진척을 보지 못했다는 게 검찰의 해명이지만 8개월간 수사하고도 의혹의 진위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은 검찰도 뼈아픈 대목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그룹 차원의 비리가 치밀하게 밝혀지기보다는 정 전 회장 등 몇몇 인사에 대한 '단죄', '망신주기' 수사로 변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8개월간 밀도 높게 수사를 했지만 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과는 다른 방향으로 흐른 것 같다"며 "유력 후보를 밀어내고 회장에 오른 사실이 함께 드러난 정 전 회장만 망신을 당하고 사건이 끝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prayer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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