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옥시 등 유해물질 피해자 조사…내년 9월 최종보고서 제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삼성전자 백혈병 환자 등이 피해 구제를 위해 직접 발병 인과관계를 입증해야 하는 국내 상황에 대해 유엔 특별보고관이 우려를 표명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소속 배스컷 툰칵(Baskut Tuncak) 인권과 유해물질·폐기물 특별보고관은 23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이런 우려가 담긴 예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한국 정부의 초청으로 12∼23일 방한한 특별보고관은 열흘간 전국을 돌며 유해물질·폐기물 피해자와 관련 단체를 만나 피해 실태를 조사했다. 

옥시래킷뱅키저와 삼성전자 등 기업, 환경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부처와도 접촉해 관련 자료를 받고 입장을 들었다.

특별보고관은 이날 "삼성전자 등 유해물질을 다루는 많은 기업의 근로자들이 인권보다는 이윤 추구를 우선순위에 두는 환경에 놓여 있어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그는 "백혈병·림프종·유방암 등 피해자와 유족 등의 증언에 따르면 노동자들이 하루 12시간 유해물질을 접촉하는 환경에서 일하며 한 달에 하루 이틀밖에 쉬지 못했고, 유해물질에 대한 충분한 정보나 안전조치도 없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유해물질로 인한 발병의 입증 책임을 피해자에게 지우는 것도 문제로 지적했다.

그는 "이 때문에 삼성전자 백혈병 피해자 60여명 가운데 단 3명만이 정부의 산재보상 대상이 돼 다소의 보상을 받았을 뿐"이라고 꼬집었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와 관련해선 한국 정부가 최근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 입법화에 나서고, 피해자에게 지원금을 지급하는 등 긍정적인 진전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피해구제를 위한 인과관계 입증 책임을 피해자에게 지우고, 유사한 비극을 막기 위한 예방 조치도 충분치 않다고 평가했다.

특별보고관은 한국 정부가 비준한 국제인권비준조약과 헌법에 명시된 안전과 환경에 대한 권리를 언급하며, 한국 정부가 이들 권리를 보장하고 권리 실현을 위해 노력할 의무가 있음을 상기시켰다.

그는 "모든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법제를 만들어야겠지만, 특히 어린이,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유해물질에 둘러싸인 농촌 주민 등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강력한 법과 제도가 존재해야 유해물질로 인한 비극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별보고관은 조사 대상국으로 한국을 선정한 데 대해 "불과 몇십 년 만에 급속한 산업화를 이룬 한국은 신흥경제국의 모델로 떠올랐다"며 "산업화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화학·유해물질의 사용과 관리 실태, 피해 사례 등은 다른 나라에도 교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특별보고관은 추가 실태조사와 사실 관계 확인 작업 등을 거쳐 권고사항 등을 담은 최종결과보고서를 내년 9월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d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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