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만하게 차려볼까요?"

▲ 대전시립미술관의 전시기획부터 미술관 소장품의 보존·수복관리를 맡고 있는 김민기씨. /사진=신현종 기자
큐레이터(Curator)는 백조 같은 존재죠. 겉으로는 물 밖에서 우아함을 자랑하는 백조처럼 화려한 조명 아래 예술을 논하지만 조금만 안을 들여다보면 마치 백조가 물 아래서 발을 동동 구르듯 온갖 잡일도 다해야 한다고나 할까요."

대전시립미술관의 전시기획에서부터 미술관 소장품의 보존·수복관리를 맡고 있는 김민기(34)씨는 자신의 일을 이렇게 표현했다.

자료 수집에서 작가 섭외는 물론 작품 선정과 배치까지 짧게는 4개월, 길게는 2년이 족히 걸리는 전시회 준비 외에도 전시작품에 대한 계약과 서류작성까지 신경써야 하는 김씨에게 우아함만을 고집하는 것은 한낱 사치다.

"최근 몇 년간 드라마나 영화에 이 직업이 소개되면서 너무 고상하게만 표현된 것 같아요. 실제 한 작품을 배치하기 위해서는 관람객들의 심리상태를 예상하고 그들의 동선까지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이런 치밀함과 섬세함 덕분인지 대전시립미술관은 2001년부터 2년 연속 문화관광부가 실시한 '전국문화기반시설 관리운영평가 미술관 부문'에서 모든 기관을 제치고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 시립미술관에서 활동 중인 큐레이터는 6명.

이 중 지난 98년 4월 개관 당시부터 미술관에 몸담고 있는 김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이 곳의 '터줏대감'이다.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이곳에 발을 들여놓은 지도 벌써 7년째다.

주 중 평균 800명, 주말과 휴일 평균 2000명이 넘는 관람객을 자랑하는 대전시립미술관을 한 번이라도 다녀간 시민들은 누구나 김씨의 손을 거친 전시회를 둘러봤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셈이다.

"당연히 관람객들이 전시회를 많이 찾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 시민들의 문화향유를 위해 일하는데 그들이 외면한다면 제 존재 이유도 없겠죠. 문화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때 그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는 것이지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은 반쪽문화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시립미술관에서 상대적으로 문화 체험 기회가 적은 농촌 분교와 같은 문화 소외지역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시 중인 '미술관 나들이'도 이 같은 맥락이라고 김씨는 말한다.

또 그는 시민들의 문화 체험에 대한 기회를 확대하는 것 만큼이나 문화 체험의 폭을 넓히는 일에도 관심이 많다.

그중 하나가 7세 된 딸 수영이의 눈을 통해 바라본 전시회를 기획하는 일.

주말시간을 작가들과의 미팅 또는 새로운 전시회 관람에 뺏기자 아빠 노릇에 조금은 소홀해짐을 느낀 김씨는 언제부턴가 딸과 주말활동을 함께하기 시작했다.

"문득 나의 눈이 아닌 순수한 딸의 눈에 비친 작품의 모습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품을 볼 때 구도가 어떤가, 색감은 어떤가를 보는 게 아니라 그냥 바라볼 때의 느낌 같은 것 말이죠."

지난 8월 전시된 '그림 속 동물여행'은 이런 영감에서 출발한 것으로, 김씨는 전시회 아이디어를 딸에게서 얻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곳에서 활동하면서 느끼는 아쉬운 점도 분명있다.

대전지역이 역사의 뿌리가 길지 않다보니 특별히 떠오를 만한 지역문화의 색깔이 없다는 것이다.

또 문화시설과 전시회 등의 서울 편중현상으로 발생하는 현실적인 지역의 어려움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래서 김씨와 시립미술관의 큐레이터들은 이런 부분의 보완을 위해 젊고 역량 있는 대전·충청권의 참신한 작가를 선정해 소개하는 전시회를 기획했다.

격년제로 열리는 '전환의 봄'이 그것으로, 조금씩 이 지역 신인들의 등용문으로 자리잡고 있는 전시회를 생각하면 이들의 마음도 흐뭇해진다.

"6대 광역시 중 부산, 광주와 더불어 대전에만 시립미술관이 개관돼 있습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대전의 문화발전 가능성은 크다고 봅니다. 서울을 통하지 않고 직접 전 세계와의 문화교류가 가능하니까요."

앞에서 말한 문화관광부 실시 문화시설 자체평가에서 부상으로 받은 상금을 모두 미술사 연구서적 구입비에 쾌척한 것도 지역문화에 대한 이들의 사랑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18∼20도 온도와 55∼60%의 습도, 온도가 너무 높지나 않을까 건조하지나 않을까 마치 자식 걱정하듯 작품 하나하나를 돌보는 그의 모습에서 이 지역 문화의 미래는 밝게만 느껴진다.

"처음 개관을 준비하며 밤 12시 이전에 퇴근해 본 기억이 거의 없어요. 이 일을 워낙 좋아해서 가능했지 직장으로만 여겼다면 불가능했을 겁니다."

소박하게 웃는 그의 모습에서 조금은 멀게만 느껴지던 큐레이터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없고 편안한 기운만이 주위를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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