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이인섭 대전충남중소기업청장

한 기업인이 사무실을 방문했다. 기업회생 절차에 있는 기업의 대표와 임원이었다. 현재 동남아 국가에서 780만달러, 유럽국가에서 720만달러 정도 수주를 받았지만 이를 수행할 자금력이 부족해 금융권 어디에서도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하소연을 들으며 가슴이 답답해졌다.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상황에서 거액의 수주를 받고도 회생 절차에 있다는 이유로 자금 조달 길이 막혀 물거품이 된다는 것은 해당 기업은 물론 우리 경제에도 큰 손실이 될 것이다.

최근 우리 경제는 안팎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세계적인 저성장 추세에 수출여건도 악화되고 있고, 내수경기 또한 좀체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청년 실업률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그나마 중소·벤처기업 창업 열기가 되살아나고 있어 희망을 보이는 정도다.

창업은 그 자체가 위험성을 내포한 도전이며, 한번 실패를 하더라도 재도전할 기회가 보장돼야 창업이 활성화될 수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수많은 기업에서 창업과 성공이 끊이지 않는 것은 실패해도 재도전의 기회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도 이 의견에 동의하고 있으며 최근 중소기업청을 비롯한 정부와 여러 기관도 실패 기업의 재도전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의 다양한 제도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부딪치는 일선에서는 제 기능이 작동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업 경영에 절대적 영향력을 가진 금융권에서 재도전 기업은 ‘실패 이력’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긴급한 자금 조달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재도전 기업들의 공통된 하소연이다.

물론 한번 실패한 기업이 갖고 있는 ‘위험’을 모두 배제하라는 말을 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문제는 일반적인 기업이었더라면 충분히 자금조달이 가능한 데 비해 재도전 기업엔 스스로 담보를 설정하는 등 적극적인 자구노력에도 불구하고 금융권에서 색안경을 끼고 보는 태도가 큰 장애물이라는 것이다.

재도전 기업이든 일반 기업이든 기술성과 성장 가능성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고 이에 대한 금융권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어야 자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들이 제대로 된 경영을 할 수 있다. 실패를 경험했던 기업도 공정하게 평가받고 경제활동을 할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재도전은 더 이상 위험요소가 아니다.

더 큰 실패에 대한 예방주사로 이미 한번 겪은 실패에 대해서는 내성이 있다. 적어도 같은 위기가 닥쳤을 때 재도전 기업은 그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 나갈 수 있는 면역력을 보유한 셈이다.

최근 우리사회에 ‘실패’도 성공을 위한 하나의 자산이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특히 창업자에게 한번의 실패는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는 것이 적지 않은 사례로 보여지고 있다. 정부가 정책 수립해 시행하고자 해도 금융권 일선에서 나몰라라 하는 태도도 오래된 ‘비정상화’ 현상이라 할 수 있겠다.

이제 금융권도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실패를 위험으로만 보는 부정적 관행을 개선해 주기를 바란다. 한번 실패한 기업도 그 기술력과 성장성을 냉철하게 판단하고 과감하게 손을 잡아 줘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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