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감으로… 사랑으로… '우리는 軍가족'

한 손엔 이름조차 생소한 차가운 정비기계를 들고 기름 낀 전투기를 매만지면서도 다른 손으로는 어려운 이웃을 내 가족처럼 어루만졌던 푸른 제복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빛바랜 제복이 나라의 상징이라는 것을 알고부터 같은 길을 꿈꿔온 딸.

▲ /사진=전우용 기자
아버지는 한곳에 정착할 틈도 없이 반복되는 이사로 수없이 짐보따리를 싸게 했고, 그로 인해 정 붙이고 마음 터놓을 쯤이면 친구와 헤어져야 하는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아버지를 원망하거나 조국을 지키는 군인의 길을 포기한 적은 없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길이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란 것을 잘 알기에 딸의 제복 사랑은 자신의 부단한 연마로 이어졌다.

총과 칼을 대신해 타악기를 손에 쥐고 고교 3년과 대학 4년을 음악과 함께했다.

이렇게 군에 맞춰 자신을 가꾼 지 7년 만인 지난해 7월 육군 군악대 부사관으로 부푼 꿈을 안고 사회 초년병 생활을 시작했다.

이효진(25·하사) 육군 군악대 타악기 담당관.

아버지를 거쳐 2대를 이어 오며 3명의 가슴 뜨거운 군인을 배출한 국방가족의 신출내기 부사관이다.

아버지는 30년을 넘게 조국 하늘을 지켜온 이종희(55·공군 제19비행단) 준위며, 오빠는 제20전투비행단에서 통신검사관으로 근무하는 이두진(26) 하사, 그리고 아버지와 오빠의 제복에 밴 땀방울에서 천직을 본 딸 효진씨가 그들이다.

효진씨는 군이 있고, 그곳에 아버지가 있어 군을 사랑한다고 한다.

조국 안위의 지킴목으로 효진씨를 이끈 것은 한 세대를 지나는 동안 한국 공군의 역사와 함께한 아버지와 그 뒤를 잇고 있는 오빠의 모습에서 조국 사랑의 참 의미를 느꼈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 살 터울인 오빠는 친구이자 가장 가까운 벗이었지만 효진씨의 눈에는 철 덜든 물가의 아이였다.

그런 오빠가 인생의 가치관을 심어 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고단한 삶의 선택에 뛰어든 뒤 많은 변화를 보였던 것.

"어쩌면 오빠의 모습을 보는 나의 시각이 변했을지도 모릅니다. 어깨 위의 반짝이는 계급장이 내 나라를 지키는 미더운 군인으로 오빠를 보게 했던 거죠."

직업이 사람을 만든다지만 한 손으로 총을 들고 다른 손으로 배고픈 이들을 어루만지는 오빠를 보면서 아버지를 꼭 빼닮은 자랑스러운 오빠를 비로소 알게 됐다는 효진씨.

효진씨가 군인의 길로 들어서기까지는 적잖은 고초가 있었다.

4년 먼저 공군 부사관으로 입대한 오빠가 극구 반대를 하고 나선 것이다.

연일 이어지는 고된 훈련과 군의 특성상 언감생심 선배들의 얼굴조차 대하기 어려운 신참 하사였던 오빠는 여동생이 흘리게 될 피와 땀의 고뇌를 모른 척 지나칠 수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적극적으로 도와주셨어요, 물론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도 일깨워 주셨지만 내 선택을 지지하고 응원했으나 오빠만은 다른 길을 택하길 고집했습니다."

그러던 오빠가 부사관 지원을 앞둔 지난해 여름 효진씨에게 마지막 한마디를 던졌다.

"네 자신을 이겨 낼 인내를 키웠느냐"는 말에 효진씨는 "나를 이겨 낼 용기도 없이 조국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후 효진씨 고집하던 여군에 발을 들이고, 나름대로 균형잡인 직업관을 심어준 것은 선배 하사관 오빠였다.

남자들만의 세계라는 혹독한 군사훈련과 내무반 생활을 3개월이 넘게 하면서도 먼저 이 길을 걸어온 오빠의 충고와 격려를 들으며 이 악물고 참아냈다.

오빠에게 직업관을 배웠다면 아버지에게는 삶의 가치관을 배웠다.

이곳 저곳을 떠돌면서도 고향 터줏대감처럼 동네 대소사를 도맡아하며 어려운 부대원에겐 아버지요, 어려운 이웃에게는 인정 많은 이웃사촌으로 불리던 아버지의 모습에서 세상 사는 법을 배웠다.

무뚝뚝한 성격에 가족들과 여행 한 번 떠날 줄 모르는 아버지였지만 집 떠나 객지밥 먹던 부대원들에게 어머니가 손수 지어 준 김 나는 밥 한 끼 먹인다고 명절이나 생일? 때면 10여명씩 불러들여 기어코 고깃국에 따뜻한 밥 한 술 들게 해야 맘 놓던 아버지.

1971년 두 집 걸러 한 집 굶던 시절에도 아버지는 부대원들의 어버이 노릇을 자처했다.

▲ 지난해 11월 14일 이효진 하사 임관식 때 찍은 가족사진.
"간부나 병사나 나라 사랑의 마음에 차이가 있겠느냐. 베풀 수 있는 위치에서 작은 정성을 덜어 주는 것도 내가 할 몫이다."

이 말이 사회 초년병인 효진씨의 인생관으로 자리잡았다.

중간 간부의 몸가짐을 아버지의 대원 사랑에서 느끼고 배웠던 터라 오빠 두진씨도 피의 대물림을 속이지 못한다.

"저에게는 몇 단계 위인 고참이지만 부대에선 막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 오빠가 부대원들의 통신검사 업무부터 사소한 고민까지 귀담아 지극정성으로 뛰어다니며 행복해하는 것을 보고 나눠 주지 않아도 이어지는 것이 피라는 것을 느끼게 됐지요."

이런 군인의 가문에 빛을 더해 주는 일이 있다.

먼저 결혼한 쌍둥이 여동생 효선씨 남편이 공군사관학교 군악대에 근무하는 손창민 중사이며, 자신의 예비 남편은 공군 제19전투비행단 이영석 하사로 2대에 걸쳐 5명의 군인이 탄생되는 진기록이 효진씨 가문에서 준비 중이다.

효진씨는 자신의 또 다른 꿈을 '시민과 가까워지는 육군 만들기'에서 찾고 있다.

육군 군악대 타악기 담당관으로 100여회 넘게 대외 공연을 해 온 효진씨는 국민 가슴속에 군을 심어 줄 수 있는 강한 무기는 부드러운 음악이란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음악을 통해 육군의 혼을 담아 내고 있다.

그것이 자신이 택한 조국 사랑의 실천이라 믿는 효진씨, 가업이 한국의 군과 그 궤도를 같이 할 것이라는 자신 찬 대답 속에 나라 사랑의 향기가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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