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섭 대전시체육회 사무처장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 위헌 결정 이후 충청지역 정서는 허탈, 좌절, 그리고는 극심한 분노로 변해 있다. 위헌 결정을 예상도 못했겠지만 위헌 결정 이후에 대한 대비는 전혀 없었던 터라 어떤 면에서는 대책 없는 분노의 표출만이 계속되고 있는 듯싶다. 이런 중차대한 사안을 보면서 웬일인지 "뛰지 마라"라는 일본인들의 지진대피 행동요령이 자꾸만 생각난다.

행정수도 위헌, 실속 있는 대처를 "뛰지 마라"라는 말은 밀지 마라, 말하지 마라, 일상 필수품을 챙겨 늘 가까이 두어라, 갔던 길로는 돌아오지 말라는 등의 일본인들에게 평소 주지돼 온 지진대피 행동요령 중 하나이다. 지진 발생 후 뛰어가다가는 오히려 서로 부딪혀 넘어지게 되어 더 많은 인명피해를 초래하기 때문이란다. 잦은 지진발생을 피할 수 없는 자연현상으로 알고 오히려 공생해야 할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들 나름대로의 지진대피를 위한 사전 숙지사항이다.

노무현 대통령 대선 공약으로 시작된 신행정수도 이전 문제는 법적으로는 분명히 끝이 났다. 그리고 지금은 해당지역민으로서 뿐만 아니라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분노할 만한 일이며 그때인 것 또한 분명하다. 해당지역민들이 평소 확실한 의사 표현이 부족한 것으로 인정되어 타 지역사람들부터 이상하게 여겨져 왔던 터라서 만이 아니다. 엄청난 국가 중대사가 중단되었다는 사실을 포함하여 일을 처리하는 일련의 과정이나 일을 추진해 온 관련자 모두의 안일한 대처에 대한 분노이기도 하다. 정략적 이유에서 특별법 통과 과정에 찬성했음에도 이후 딴죽을 걸어 일을 이 지경에 이르게 한 야당도 잘못이지만, 위헌 결정 가능성을 내다보지 못한 점이나 위헌 소송 제기 이후에 대한 안일한 대처로 일관해 온 듯한 정부나 여당의 대처도 크게 잘못 되었기는 마찬가지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국민적 합의 도출이 이루어졌다고도 볼 수 없었다. 대선과 총선에서의 여당 승리를 국민적 합의로 보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특별법 통과 이후 충분한 토론이나 논쟁 없이 이루어진 공청회 등을 통한 형식적 노력도 국민적 합의 도출과정으로는 내용적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해당 지역민들에게 확신을 주는 공감대 형성마저 실패해서, 적지 않은 이 지역 사람들조차도 반신반의해 왔던 것 또한 사실이다. 깊이 있게 따지고 보면 행정수도 이전 추진과정이 너무 앞만 보고 뛰어 가기로 일관해 왔던 것 같다.

이제 와서 굳이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자는 의미가 아니다. 이후에 또 있을 수 있는 엄청난 시행착오를 거듭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의 분노표출 이상으로 위헌 결정 이후를 실질적으로 대처하는 일도 중요하다. 해당지역민의 민심을 분명히 표현해 나감으로써 정부의 행정수도 이전 초기 목적을 궁극적으로 달성시킬 수 있는 대안 도출과 실천에 힘도 실어주는 한편 가장 좋은 지혜로 묘안 또한 짜내야만 한다.

민심표출과 지혜 모으기를 동시에 위헌 결정 이후 각종 대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행정특별시라는 정부의 대안도 나왔고 이 지역에서는 국민투표를 통한 정면 돌파가 거론되기도 했다. 국민투표 등의 대안이 정부에 대한 압박용이든 실현성 있는 대안이든, 어느 것이 이 지역은 물론 국가를 위해 가장 좋은 대안일지를 심사숙고해야 한다. 이제 필요한 만큼의 충분한 시간을 두고 고민해 보아야 한다. 이제 정부의 일방적인 서두르기 식 추진에만 맡겨 두어서도 안 된다. 정말 바쁘기도 하지만 이제 더 이상 대책 없이 뛰지는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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