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마른기침, 고열, 발작, 뇌출혈, 그리고 결국은 사망…. 아무 것도 만져서도 또 누구도 만나서는 안 된다. 단 한 번의 접촉으로 모든 것이 끝나고 만다.' 2011년 가을을 달군 감염 재난 영화 '컨테이젼(contagion)'의 얘기다. 최근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가 전국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가고 있다. 현재 23개국에서 1100여명의 감염자가 발생해 465명이 사망했다. 우리나라는 지난 5월 20일 중동지역에 다녀온 한 남성(68세)으로부터 전파돼 ‘어? 어?’ 하는 사이, 30명이 확진판정을 받았다. 격리자만 1300명을 넘어섰고 화들짝 놀란 학교 200여곳은 휴업을 단행했다.

▶2009년부터 2년간 국내를 강타했던 신종플루로 263명이 사망했다. 확진환자만 75만명으로 358만명이 항바이러스제를 맞았다. 전 세계적으로는 1만8000명이 죽었다. 지난해 지구촌을 휩쓸고 간 에볼라로 서아프리카 지역에서만 1만명이 사망했다. 에볼라는 아프리카 콩고 북부의 작은 마을 얌바쿠를 끼고 흐르는 강 이름이다. 감염된 환자는 눈 코 입에서 피를 토하다가 1~2주 만에 사망했다. 이 바이러스로 이 마을은 쑥대밭이 됐고 431명 전원이 세상과 작별했다. 이후 3년 또는 19년 간격으로 불규칙하게 창궐하고 있지만 발견된 지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치료제나 예방약은 개발하지 못했다.

▶'사스의 치사율은 10%, 메르스 40%, 에볼라 60%, 탄저균의 치사율은 80%'라는 말이 돌고 있다. 메르스의 사망률은 사스보다 4배 이상 높고 증상이 나타난 후 사망까지 걸리는 시간도 두 배 더 빠르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숙주(박쥐)로부터 사람에게 전염되는데 혈액이나 체액 등 환자와의 직접 접촉으로만 전념된다. 당연히 전파력이 낮다. 메르스(숙주:낙타)는 환자가 자유로이 돌아다니면서 옮기기 때문에 감염 위험이 크다. 가장 두려운 게 사람이고 가장 멀리할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인 것이다.

▶14세기는 페스트, 20세기는 에이즈, 21세기는 에볼라(C형간염 에이즈)가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간다. 그리고 말라리아, 홍역, 이질, 사스, AI(조류인플루엔자), 신종플루, 슈퍼박테리아가 생겨나고 있다. 70년대 후반 이래 새로 발견된 전염병만 30여종이다. 한국에서도 최근 10년 사이 렙토스피라증, 쓰쓰가무시병 등이 새로 나타났다. 이런 변종, 변이의 바이러스는 전쟁보다 더 파괴적이고 참혹하다. 일례로 스페인독감의 희생자만 2000만명이 넘는다. 하지만 이를 방어해야 할 정부는 메르스가 창궐하자 "개미 한 마리 못 지나가게 하겠다"고 호언장담했을 뿐 국민들은 여전히 패닉상태다. 공자님 왈 '정치는 신(信)'이라고 했다. 정치는 백성들의 먹을 양식(食)을 넉넉히 하고, 국방력(兵)을 튼튼히 하면서 백성들이 신뢰를 주면 잘하는 정치라는 것이다. 이런 판국에 손만 잘 씻으라고 하니 이게 도대체 대책인가, 미봉책인가.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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