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왜 까맣게 잊고 살았던 짝패들이 봄바람을 타고 밀려올까. 교복 호크와 단추를 풀어헤치고, 모자는 삐뚜름하게, 가방은 투깔스럽게 옆구리에 끼던 벗님들이다. 의리 하나로 똘똘 뭉쳤던 똘마니들, 뽕밭 멜로에도 화들짝 놀라던 순수시대 탕아들, 객기를 참지 못해 사소한 일에도 욱하던 왈패들, 돈도 빽도 없으면서 허세만 가득 찼던 꺼벙이들…. 이들과 동락했던 그때가 그리운 건 배고픔과 슬픔을 나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제 하얀 세월의 더께를 머리에 잔뜩 뒤집어쓰고 내 주변에서 서성거린다. 어느 주말엔 고교동창이, 어느 주말엔 대학동창이 술통을 들고 내 주변을 기웃거린다.

▶학창시절, 바람둥이 친구가 내 여자를 도둑질했다. 녀석은 치마만 둘렀다싶으면 지분거렸다. 지나가는 바람에게도 지분거렸다. 당시 난 운명의 변곡점에 서 있었다. 가난했고, 배고팠고, 그냥 추웠다. 녀석은 내가 사랑하는 줄 뻔히 알면서도 그녀를 사랑했다. 나는 말했다. 나만 바라보라고. 하지만 결국 여자는 떠났다. 배신감은 극에 달했다. '내 결론은 너였는데 결국 날 버린 건 너'라는 식의 배신감이었다. 술에 취해 진상도 부렸다. 하지만, 차갑게 식어버린 마음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그리고 30년이 흘렀다. 공소시효는 지났다. 사랑의 유통기한도 끝났다. 그러나 난 죽을 때까지 녀석을 용서하지 않을 작정이다. 친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凸(Fuck you)

▶잠시 어깨를 빌려주기도 하고, 어깨동무를 하기도 했던 동창(同窓)은, 같은 창문을 이용한다는 뜻이다. 같은 문을 드나들어서 동문(同門), 같이 공부한다고 동학(同學)이다.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생각을 하는, 그래서 친구는 옛것을 그립게 만드는 고전적인 맛이다. 텃밭에서 갓 따온 상추에 막된장 한 숟갈 떠서 싸먹던 밥맛, 밥풀이 덕지덕지 붙은 고구마 같은 맛, 밥물이 밴 가지나물을 손으로 쭉쭉 찢어 통깨 좀 넣고 참기름에 조물조물 무쳐먹던 그 맛, 찬밥 한 덩이에 김치를 척척 걸쳐먹던 그 맛, 보온밥솥에서 '식은 땀' 줄줄 흘리던 생생했던 밥맛, 그 가난한 맛이 친구였다. 70~80년대 황음무도한 시대를 소주에 절어, 삼겹살을 굽던 그 맛이 친구였다.

▶낭만은 사라졌다. 이제 낭만은 일상의 언어가 아니다. 낭만을 즐길 나이가 저만치 가버렸기 때문이다. 친구란, 식구처럼 부대끼며 엄혹한 시절을 함께 견딘 사이라고 생각한다. 발 닿는 대로 돌아다니며 꺼이꺼이 질펀하게 우는 사이라고 생각한다. 시절이 거칠어졌을 때, 고난이 찾아와 세상이 하수상할 때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친구다. 인연이 모여 인생이 되듯 삼류인생들의 노랫가락이 흘러넘치면 추억이 오사바사하게 내려앉는다. 꽃 등불에 술추렴이 절로 난다. 친구야, 재촉마라. 먹고살기 버거워 두문불출할 땐 그냥 모른체해다오. 살다가, 살다가 너무 힘들어서 그러는 것이니 못본체 해다오. 또 그리워지거든 만나면 되거늘….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