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로]

▶신의 땅, 영혼의 성소, 우주의 자궁…. 날이 걷힐 때 구름 위로 홀연히 내비치는 히말라야 설산은 찬연하다. '산기슭'이라는 뜻의 네팔(Nepal)은 에베레스트를 비롯해 8000m 이상 고봉 14좌가 있어 '세계의 지붕'이라고도 불린다. 1인당 국민소득은 200달러가 조금 넘는다. 우리나라 돈으로 치면 청바지 세갯값이다. 그런데도 삶의 만족도는 높다. 이유가 뭘까. 네팔사람들은 미래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그냥, 오늘만 잘 살면 땡이다. 그래서 저축의 개념도 없다. 있으면 먹고, 없으면 먹지 않는다. 해가 뜨면 먹고 해가 지면 잔다. 오늘 꼭 해야 할 일도 없다.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되니까…. 이래 사나, 저래 사나, 하루의 질감은 똑같다.

▶네팔인들은 힌두교 여신 바그와티, 땅의 여신 바순다라, 바람의 신(神) 바유를 숭배한다. 사람이 죽으면 (오래) 울지 않는 이유도 늙으면 죽고, 죽으면 당연히 환생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재산이 늘어날수록 고민은 불어난다는 무욕(無欲)의 이치를 깨달아서일까. 나보다 누가 부자인지, 나보다 누가 더 공부를 잘하는지 따지지 않는다. 가난을 기꺼이 껴안는 '긍정의 힘'은 결국 속도의 안배다. 스마트폰과 TV의 노예가 되지 않는 것, 느리게 보고 느리게 사는 것, 문명의 이동수단보다, 두 다리의 느림이 행복의 속도를 높인다고 여긴다. 빠르게 살면 행복은 빠르게 간다. 느리게 살면 불행은 느리게 온다. 하루에 6시간이나 정전(停電)되는 어둠의 나라지만, 소망의 촛불 디파(Dipa)는 그림자를 사르며 빛으로 산란한다.

▶아, 그런데 '세계의 지붕'이 무너졌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을 바라볼 수 있었던 그 '샹그릴라의 행복'이 무너졌다. 신(神)도 네팔의 행복을 지켜주지 못했다. 5000명이나 묻혔다. 1만명으로 불어날 개연성도 있다. 1934년 1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네팔 역사상 최악의 지진에 필적하는 대참사다. 1923년 9월 1일 일본 도쿄와 요코하마에서 발생한 지진(쓰나미)땐 14만명이 사망했다. 2010년 아이티 지진으로 수도 포트로프랭스가 사라졌고, 중국 탕산(唐山) 지진땐 최대 75만명이 묻혔다. 또 터키, 그리스, 크레타의 청동기 문명도 지진 때문에 소멸됐다. 자연의 재앙 앞에 신(神)은 없다.

▶대한민국 행복지수는 OECD국가 중 꼴찌다. 왜 행복하지 않을까. 이유는 간명하다.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집안' 꼬락서니 탓이다. 진보와 보수는 머리끄덩이를 잡고 싸우고, 평화로워야할 사회는 때때로 침몰한다. 사람을 귀히 쓰고 싶으나, 귀히 쓸 사람이 없다. 사람을 귀히 여기고자 하나, 귀히 여기는 시스템이 없다. 인사(人事)는 참사(慘事)다. 네팔의 슬픔이 남의 나라 얘기 같지 않은 건 우리네 슬픔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팔의 눈물은 우리의 눈물이다.

나재필 편집부국장 najepi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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