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의 손때묻은 한의서 그속엔 건강한 삶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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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70~80년도 넘은 옛날 이야기다.

대전 은행동에 이원규라는 청년이 살고 있었다.

어디서 배웠는지는 몰라도 청년은 침과 약제(藥制)를 꽤 잘 조제한 모양이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한의사 자격증은 없었지만 청년은 동네 사람들을 상대로 침도 놓고 약도 지어 주는 소박한 한의원을 차려 운영했다.

비슷한 시기에 충남 금산에 살던 김영진씨도 서당을 꾸리며 동네 사람들에게 약제를 지어 주는 등 한의원을 했다.

이들 둘은 재주가 신통했는지 꽤나 많은 사람들이 문턱을 드나들었다고 한다.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2004년 대전시 유성구 봉명동.

대로변을 약간 비켜간 골목길 모퉁이에 '건일당'이라고 이름 붙은 깔끔한 한의원을 만날 수 있다.

건물의 생긴 모습을 보거나 시설을 보더라도 영낙없이 생긴 지 얼마 안되는 한의원이다.

차라리 약간 촌스런 느낌이 풍기는 여느 한의원보다 현대식으로 차려 놓은 모양새가 일반 병원을 연상케 한다.

이곳이 바로 김영진씨와 이원규씨의 손자 김성동(金聲東·40)씨가 운영하고 있는 한의원이다.

김영진씨가 김 원장의 할아버지고, 이원규씨가 외할아버지인 것이다.

"어릴 적에 외갓집에 가면 누런 포대 종이가 집 천장에 줄줄이 달려져 있던 것이 생각납니다. 약초 같은 걸 옛날에는 그렇게 보관했던 거지요."

김 원장의 어릴 적 추억은 계속 이어진다.

"친할아버지는 시골에서 서당을 운영하셨나 봐요. 그런데 서당만으로 살림을 꾸려나기기 힘들잖아요. 글도 많이 읽으셨고 한의약에 대해서도 박식하셔서 동네 분들에게 약도 지어 주고 하셨대요."

이렇게 선대 때부터 이어진 한의학과의 인연은 김 원장의 아버지 김조한씨의 고집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고등학생이었던 김 원장을 강제로 대전대학교 한의예과에 입학시킨 것.

"아버지께서 한의약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작은아버지를 지금의 중동 한약거리에 있는 약제상에 취직시키고는 저한테는 한의학을 배우라고 말씀하셨지요."

억지로 들어간 한의예과에 쉽게 적응할 리 없었다.

하기 싫은 공부가 맘에 들지 않는 것은 둘째 치고 초등학교 때부터 미국식 교육을 받아왔던 김 원장은 동양학적인 한의약이 도무지 맘에 들지 않았다.

처음에는 술도 많이 먹고 여기저기 학교 동아리들도 기웃거리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어릴 적부터 늘상 보아온 한의약에 이미 익숙해 있던 김 원장에게 온통 한약 냄새로 가득한 강의실은 친근감을 갖게 했다.

"어느날인가 일종의 약물학인 본초학을 배우는데 아는 내용이 많더라고요. 시골에서 컸고 어릴 적부터 보았던 약초들이 책에 나오니 빨리 익힐 수밖에 없잖아요. 한의원 분위기에 익숙하고요. 어느새 한의학에 재미가 생기더군요."

김 원장의 진료실 한쪽에는 외할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의학입문', '천가대요', '주역', '방학협편' 등의 한의서가 자리를 잡고 있다.

외할아버지 이원규씨가 당신 쪽으로는 한의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없다며 김 원장이 가져가 연구 많이 하라고 물려준 것들이다.

비록 희귀한 의학서는 아닐지라도 당신이 환자들을 진료를 하거나 책을 읽으며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꼼꼼히 적어 놓거나 다른 책에 나온 인체 해부도 등을 정성스럽게 오려서 붙여 놓기도 했다.

할아버지들에게 물려받은 것은 한의학적인 분위기만은 아니다.

한의학뿐 아니라 의사로서의 자세도 물려받았다.

조부들 모두 돈이나 명성을 얻기 위해 한의학을 했던 분들이 아니다 보니 늘 주변 사람을 돌보는 재미로 사셨다.

이 같은 기질은 김 원장에게 고스란히 이어졌고, 한의사로서는 드물게 사회복지사 1급 자격을 따는 계기가 됐다.

14년 전 지금의 건일당 한의원을 개원하고 한창 자리를 잡아가는 가운데도 한남대학교 지역개발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것이다.

이후에 매년 정기적으로 지역을 돌며 무료 순회 진료를 하는가 하면 대전YMCA 이사 및 사회복지사업 위원장, 소비자 문제를 생각하는 시민의 모임 운영위원, 대전시 개발위원회 위원을 맡아 왕성한 시민 사회단체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제는 '건일당 한의원'이라면 대전 사람들이면 한 번쯤 들어 봄 직하리만큼 규모 있게 성장했지만 이웃과 환자에 대한 김 원장의 소박한 마음은 할아버지 때와 달라진 것이 없다.

김 원장은 요즘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한의사를 만들기 위한 조기교육(?)에 한창이다.

김 원장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 놈이 한의사가 됐으면 하는 생각에 틈나는 대로 얘기하고 있는데 아직은 별 관심이 없네요"라며 "이렇게 이어온 한의원의 명맥이 아깝기도 하고 한의사로서 느낄 수 있는 보람도 물려주고 싶습니다"라며 쑥스러운듯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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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동 한의사는

▲1964년생

▲남대전고등학교, 대전대학교 한의과대학, 대전대학교 대학원 한의학과 졸업

▲한남대학교 지역개발대학원 사회복지학과 졸업(사회복지사 1급)

▲건일당한의원 원장, 대전대학교 한의과대학 겸임교수

▲대전시 배구협회 부회장, 유성구 체육회 이사, 대전 YMCA 이사·사회복지사업 위원장

▲대전시 개발위원회 위원, 소비자문제를 생각하는 시민의 모임 운영위원, 대전 사격연맹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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