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청주시청 공무원들이 소속 시장을 '행자부의 개(犬)'에 비유한 사건이 벌어져 파문이 일고 있다. 청주시 공무원노조가 홈페이지 게시판에 시장을 조롱하는 문구를 걸친 개의 사진을 올렸다. 이들은 이 개를 시청광장에서 끌고 다니며 시위를 했다고 해서 청주시내가 시끄럽다.

무슨 일이 있기에 '죽기 아니면 살기' 식 감정싸움으로 치닫는지 한심하기 그지없다. 사건의 발단은 행자부의 지침에 따라 동절기 퇴근시간을 기존 오후 5시에서 6시로 연장하는 지방공무원 복무개정을 청주시가 추진하려는 데서 비롯됐다. 그들은 모두 국민에 대한 봉사자라는 지위에 있을 뿐이다. 서로 불구대천지수(不俱戴天之讐)처럼 얼굴을 붉힐 처지가 아니다. 청주시민들이 배신감을 토로하는 이유를 알 만하다.

하기야 야당이 정치 풍자극을 빌어 대통령을 개에 비유해도 그럭저럭 굴러가는 세상이다. 공무원이 어떤 이유를 붙여서라도 시장을 강아지로 비하하는 것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그 자체도 해외 토픽감이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 모습을 비웃으면서도 결국 그런 경지를 스스로 닮아 가는 아이러니를 확인할 수 있다. 경기 성남 모 초등학교 학생 15명이 담임교사를 징벌하겠다며 관할 치안센터로 몰려간 소동도 그런 류에 속한다. 불량한 학습태도를 나무라면서 반성문을 쓰게 한 게 화근이었다는 학교측의 설명이고 보면 땅에 떨어진 교사의 권능 및 권위를 실감케 된다.

요즘 우리 사회엔 개인·계층·지역·세대간에 사소한 문제를 둘러싸고 극단적인 대결 양상으로 치닫기 일쑤다. 나의 주장만이 지고지선(至高至善)이다. 건전한 담론이야말로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사실 민주주의의 장점은 구성원들이 토론과 대화를 통해 서로 다른 입장을 개진하면서 사회 합의를 도출해 내고 그럼으로써 사회 통합을 밑바탕으로 강한 추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민주주의가 절차나 과정을 중시하는 이유다.

그래서 양보와 타협 시스템을 적절하게 활용해야 하는 분야가 바로 정치권이다. 그런데도 사회 갈등을 조정해서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할 기능을 정치권 스스로 포기한 지 이미 오래다. 각종 사안을 이념이라는 잣대로만 재단하면 막상 본질은 외면되고, 결국 사회 갈등만을 양산할 뿐이다. 한국 사회의 편가르기 풍조는 가히 심각한 수준이다. 이젠 하나의 삶의 양식으로 고착화되는 것 같다.

계층적, 이념적 갈등으로 확산되고 있는 고교등급제 파문만 보더라도 그 기저엔 교육평등주의라는 '이상'과 고교간 학력 차의 엄존, 변별력 부재라는 '현실'과의 괴리현상이 도사리고 있다. 참여정부는 좌파정권이라는 논란도 따지고 보면 부질없는 짓이다. 심지어는 성매매 금지조치가 좌파적인 발상이라고 주장하는 인사들도 줄을 잇는다. 도덕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성을 사고 파는 남의 자유까지 규제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논리다. 모든 걸 이념의 원죄(原罪) 탓으로 덧칠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갈등의 간극을 좁히면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에 앞서 색깔론 논쟁에 살기(殺氣)가 넘실댄다. 좌(左)아니면 우(右)를 선택하도록 강요한다. 친북 좌파는 '타도 대상'이며, 중간 세력은 기회주의자로 '교양 대상'이란다. 지식인으로 자처하는 모 인사가 자신의 인터넷에 국민행동요령이란 것을 올려놓았다. "애국 보수들이 좌파보다 수와 돈이 많다. 행동하지 않으면 그건 자위하는 행위"라니 무슨 시민혁명을 하자는 것인지 섬뜩하기만 하다.

모두가 이런 꼴이다. 서울시청 앞 10만 보수단체 집회에 이어 이와 유사한 크고 작은 집회가 곳곳에서 열리고 있다. 세 결집을 위한 몸부림으로 비쳐진다. 국가보안법, 과거사 기본법, 사립학교법, 언론관련법 등 이른바 4대 개혁입법 처리를 둘러싼 여야 격돌이 불가피하다. 이래저래 국민만 폭풍전야 속에서 먹고살 궁리에 피곤할 뿐이다.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