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춘추] 이항로 대전동신과학고 교장·과학교육학박사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영재가 적절한 환경적 요인을 만나지 못하면 재능은 숨어버리고 말 것이다. 영재들의 호기심과 집착력은 주위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보이고 종종 충격을 줄 수도 있기 때문에 그들은 획일화된 학교 교육을 접하게 되면 능력을 숨기고 평범한 학생이 되기 위해 노력하곤 한다.

상위 1~3% 사이의 아이들이 영재교육을 받던 과거와는 달리 그 범위가 확장된 오늘날에는 더 많은 영재들이 성공할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타고난 유전적 요인보다는 환경이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환경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가정과 학교이다. 주위 사람들이 무시하는 아이의 호기심을 관심 있게 지켜봐 주고 함께 해 주는 가정의 허용적인 분위기 속에서 아이는 자신의 호기심을 긍정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된다. 적절한 영재교육을 받을 수 있는 특목고에 입학하게 된다면 그들은 지적능력을 키우는 수업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계속되는 팀별 과제와 팀별 실험실습, 팀으로 하는 예술활동, 봉사활동 등 수많은 협업을 통해 지적·감정적 노동에 시달리게 된다.

성공하는 과학영재가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유머’다. 과학영재라고 하면 과학적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하루 종일 실험만 하거나 과학자료들을 익히며 공부해야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협업활동을 성공적으로 이루는 핵심은 의외로 '유머감각'이라고 필자는 말하고 싶다. 그러나 타인을 격하시켜 놀려서 얻는 유머는 저급유머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영재들은 어떤 유머를 사용할까? 12세에 시카고 대학 의학부에 진학한 영재 쇼 야노씨는 지루한 해부학 시간을 즐겁게 진행하는 교수님의 농담을 언젠가 써먹기 위해 노트에 꼼꼼히 적어 놓았다고 한다. 대부분 과학자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넌센스 퀴즈 같은 것이었다. 파인만 교수는 그의 낙서장이나 지인에게 보내는 편지 등을 통해 얼마나 유머러스한 사람인지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연봉이 매우 높은 교수직을 거절하기 위해 여자 친구와 새 아파트 이야기를 들먹이며 써내려간 편지글은 '거절'이라는 기분 나쁜 결론을 유쾌하게 만드는 글로 유명하다.

특목고에 재직 중인 필자의 입장에서 우리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이중적인 마음이 오고간다. 개인 공부를 열심히 하여 지적 능력을 쌓아 명문대학에 입학하여 학교를 빛내길 바라는 마음과 쇼 야노씨의 해부학교수나 파인만 교수처럼 좋은 분위기를 이끌고 타인을 배려하는 유머감각을 가져서 협업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인재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학부모와 이 사회의 마음은 어느 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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