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포럼] 김필권 국민건강보험공단 대전지역본부장

지금은 세계 초강대국이 된 미국도 240년쯤 전에는 영국의 식민지에 불과했다. 그런 미국을 독립하게 만든 계기는 '세금 인상'이었다. 식민지에 설탕과 인지(印紙) 등 각종 물품에 거액의 세금을 부과한 결과 불만이 누적돼, 1773년 보스턴차사건을 시작으로 독립혁명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그만큼 세금 인상은 예민한 주제다.

그래서일까. 지난 9월, 내년부터 담뱃값을 인상한다는 정부의 발표에 전국이 떠들썩했다. 한 달이 넘은 지금도 그 여진(餘震)이 멎지 않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담뱃값 인상은 효과적인 금연정책의 하나다. 세계보건기구는 지난 5월 세계 금연의 날을 맞아 한국 등에 "담뱃세 수준을 현재보다 50% 이상 올려야 한다"고 권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발표가 금연 열풍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긴 어려웠던 것 같다. 수도권 버스와 지하철 요금에서부터 고속도로 통행료, 하수도 요금 등 각종 공공요금 인상 발표가 이어지면서 '서민증세'라는 반대 여론이 들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러자 국회에서는 담뱃값 인상폭을 하향 조정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일부 단체에서는 위헌을 들먹이며 소송을 벼르고 있다. 그 사이에 정작 국민의 건강을 해치는 흡연의 폐해에 대한 이야기는 쏙 들어가 버렸다. 또한 지난 4월 14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공공기관 최초로 담배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담배소송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도 엷어지고 있는 듯하다. 담배의 위해성과 담배회사의 불법행위를 밝혀야 할 담배 문제가 '서민증세' 프레임에 갇혀버린 것이다.

'돈보다는 생명'이다.

비록 세금 문제가 얽혔지만 적어도 담배에 한해서는 가격보다는 위험도가 더 중요하다. 목숨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흡연자라면, 담뱃값이 얼마나 오르는지 보다는 담배 한 개비를 피울 때마다 당신의 수명이 얼마나 줄어드는지, 폐암 등 질병에 걸릴 확률이 얼마나 높아지는지가 더 중요하다.

당신이 비흡연자라면, 당연히 간접흡연의 위험과 흡연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담뱃세의 인상폭과 세목 논쟁 모두 담배의 위험성을 놓치게 만들고 담배회사들에게 면피의 기회를 주고 있다. 그러니 이제는 흡연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 자체를 다잡아야 한다. 담뱃값이 얼마가 됐든,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 위험한 물질을 싸게 들이마시냐 비싸게 들이마시냐의 차이일 뿐이다. 이제부터라도 담배를 '마약보다도 중독성이 강한 유해물질일 뿐이며, 서서히 우리의 건강을 무너뜨리는 적군(敵軍)' 쯤으로 바라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담뱃세 논쟁이 무의미하다는 뜻은 아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드리는’ 지혜가 요구된다고 볼 수 있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해 흡연의 위험성과 효과적인 담배 규제 방안에 대한 관심은 지속돼야 한다.

필자는 건보공단이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겨우 제기한 담배소송이 잊혀질까 두렵다. 담배소송은 공단과 흡연피해자들이 국내외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담배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온몸으로 결투를 벌이는 콜로세움이다. 공단은 담배회사들이 밝히지 않은 담배의 구성물질과 마케팅 전략, 로비 등을 백일하에 드러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원하는 것은 승리요, 필요한 것은 여론의 관심과 지지 뿐이다.

오는 11월 7일 담배소송의 2차 변론이 열린다. 국민의 건강과 건강보험재정을 갉아먹는 담배를 가두기 위해, 그동안 잊고 있던 담배소송을 공론의 장으로 풀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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