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포럼]
박준태 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 교장

자르고(切), 썰고(磋), 찍고(琢), 갈고(磨)는 우리 기능인이 매일 하는 작업이다. 때로는 곱은 손을 호호 불며, 때로는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실습장에서 조이고, 칠하고, 자르고, 갈고, 닦는다. 절차탁마(切磋琢磨)만 하는 게 아니다. 때론 절탁차마(切琢磋磨), 절마차탁(切磨磋琢), 마탁차절(磨琢磋切) 등 수없이 뒤집어보고, 거꾸로 세워보고, 내가 뒤집어지고, 대상을 뒤집어 보면서 새로운 발상을 생각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우리 아이들의 손은 이렇게 정교화 돼 간다. 고사리 같았던 손은 공구와 기계가 손에 익을 때까지 베고, 까지고, 찔리는 상처를 몇 십번을 해야 비로소 기계 앞에 자신있게 설 수가 있다. 그리고 제품이 완성이 된 후에야 그 상처가 경험이고, 스승이고, 영광인 것을 알게 된다.

우리 기능인은 이렇게 몸으로 익힘으로써 숙련공이 돼가는 것이다. 이런 기능인들이 모여서 선의의 경쟁을 펼쳤던 곳이 경기도 부천 일원에서 열린 제49회 전국기능경기대회다. 그러나 기능인을 키우는 교육자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은 대회 규모는 커지고 있으나 대회는 관심 밖으로 멀어진다는 느낌이다. 과거에는 주요 정치·경제·관계 인사도 참석했고, TV, 신문 등 언론에서도 관심을 가졌으나 언제부턴가 기능인을 격려해 주어야 할 주요 인물들이 빠지고, 관계기관의 형식적인 참석과 기능인들만의 잔치로 끝난다는 기분이 드는 건 필자만의 느낌인가?

대통령은 지난해 인천 전국체육대회 개막식 기념사에서 "많은 선수들이 전국체전에서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했고, 여기서 갈고 닦은 기량은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 든든한 토대가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선 그런 평가를 들어볼 수가 없었다. 우리는 이런 대우 속에서도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18회 종합우승이라는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다. 이런 전국기능경기대회는 처음부터 동력이 부족했고, 의지도 약해 보였다. 그동안 기능인은 부국강병의 초석이 됐고, 국가 성장의 동력이 돼 온 것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49년이나 이어온 전국기능경기대회가 전국체육대회보다도 관심 밖이라는 것은 기능인으로서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러고 보면 기능인의 예우도 전보다 매우 낮아졌다. 서울대, 카이스트 공대생 20%가 의대나 로스쿨로 가려고 자퇴한다는 보도는 씁쓸하다. 이공계 이탈은 국가적 손실이다. 이공계의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 국가의 책임이 아닐 수 없다. 독일은 국가정책으로 장인을 우대한다. 일본은 수백 년 가업을 잇게 한 장인들의 꿈이 기술대국 일본을 만들었다.

이제 전국기능경기대회도 끝났다. 강을 건넌 후에는 뗏목을 잊어야 한다. 강을 건넌 뒤에도 뗏목을 메고 다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경기는 항상 영광과 쓰라림을 남긴다. 영광을 누린 자는 교만하지 말고 더욱 정진하고, 쓰라림을 맛본 자는 꿈을 수정하고, 더 강한 꿈을 키워야 한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그 어딘가에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꿈이 아름다운 건 무한한 가능성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작은 불씨 같지만 기능인들의 섬세한 손동작과 눈썰미 그리고 꿈을 이루겠다는 마음가짐이 확고할 때 기술한국, 기술세계화로 다가설 수 있다. 아직은 여리고 어린 손길이지만 절차탁마(切磋琢磨)의 그 정신은 기술한국의 꿈을 향하고 있다. 학교는 그 꿈을 키워줘야 하고, 국가는 이 꿈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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