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포럼]
김규원 충북발전연구원 연구위원

매년 가을 운동회 달리기에서 꼴찌를 할 수 밖에 없는 사연인 즉 연골무형성증으로 지제장애 6급. 해서 올해도 동생의 슬픈 눈물이 계속되는 듯 싶었다는 큰누나. 하지만 같이 달린 동생 친구들은 사전에 몰래 작당을 해서 결승선에서 몸만 불편한 동생을 기다려 다같이 1등으로 들어갔다. 이 사연을 인터넷에 올린 큰누나 글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 사람 중 한 명으로서 참 멋진 녀석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가 아무리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의 경쟁이 심해도 이런 친구들이 있음에 세상은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부터는 뱀다리. 이 이야기 속에 담긴 배려, 존중 그리고 평등은 물론 공감이라는 가치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인 성찰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 같다. 인간에 대한 탐구란 결국 인간성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떠한 가치를 내재화해야 되는가, 이른바 어떻게 살 것인가 혹은 인생은 살만한 가치가 있는가 등에 대한 사유와 실천을 배경으로 한다. 이런 주제는 대학 1학년 때 주로 듣는 철학이나 문학, 역사 등의 과목을 통해 체화되고 습관화된다. 요즘 같은 계절에는 멍 때리기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처럼 폐과와 정원 감축 등으로 대학에서 인문학을 포기하는 이른바 적반하장이 상식인 모국(母國)에서 오히려 일반인들의 인문학 갈증이 반갑고 눈부시다.

주로 유명 강사의 특강 위주로 진행되거나 드물게 체계적인 책읽기와 글쓰기, 그리고 토론과 체험 등이 있기도 하다. 대학입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실용적 접근도 있고 아이들의 생각을 넓히고 싶다는 희망도 있겠다. 아무튼 어떤 방식을 택하거나 어떤 목적이든 간에 근본에 대한, 근원과 시초에 대한 고민과 사색을 전제로 한다면 문제는 없을 듯 싶다.

이렇게 본다면 아르케(arche, 원리·시초)를 찾는 인문학적인 사유와 실천은 결국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정서와 감정에 기초한다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위민(爲民)보다는 여민(與民)을, 삼강(三綱)보다는 오륜(五倫)에 맞는 콘텐츠일 것이다. 동시에 인간의 삶의 연장과 배경으로써 문화는 물론 문화적 실천의 시공간적 무대로써 장소성에도 수렴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지금 ‘여기’라는 장소성은 우리의 삶의 주요 무대인 도시 혹은 도심으로까지 확산이 될 수 있으며, 응용적 사고를 한다면 재생 혹은 활성화 등의 단어가 붙어 다니는 구도심, 원도심에도 적용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원도심 활성화에 인문학이 활용될 수 있을까? 단순히 지역의 유명한 사상가나 철학자를 기념하는 길 혹은 기념관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길이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중요한 것은 지역민들의 정서와 가치 등등에 대한 사전 조사와 인류학적인 관찰을 토대로 진행돼야 하지 일방적인 즉 토건(土建)중심의 발상과 정책으로는 매우 곤란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제주 올레길을 본따 만든 전국의 20여개의 길들, 살 길이 요원한 이 길들은 안녕하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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