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백 행 운
을지대학교 대학원장

하늘이 내린 임금이라고 칭송받는 세종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뛰어난 왕이었다. 세종의 관심사는 모두 백성을 위한 것이었다.

한글과 각종 과학기기 그리고 대마도와 여진정벌, 각종 제도 정비 등 당대의 모든 분야에 혁명적인 성과를 거둔 임금이었다. 한마디로 신생국 조선의 품격을 몇 단계 업그레이드한 주인공이었다.

'조선'이라는 나라의 틀은 세종 때 이미 완성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문에 조선이 배출한 걸출한 이 성군의 이름은 오늘날 세종특별자치시의 이름을 통해 길이 기념되고 있다. 그런데 그에게도 한 가지 약점이 있었으니, 애석하게도 그의 수명은 너무나도 짧은 53세(1397-1450)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만일 그가 30년 정도만 더 오래 살아서 나라를 다스렸다면 우리나라의 역사는, 그리고 우리나라의 지도는 바뀌었을 지도 모른다. 조선왕조 500년간 역대 왕의 평균수명을 분석해보면 매우 흥미롭다.

조선 왕들의 수명은 사약을 받고 죽은 단종을 제외하면 평균 47세이고, 가장 장수한 왕은 영조로 83세까지 살았다. 이는 당시 평민들의 평균수명이 44세였고 양반들은 50대 초반이었던 점에 비하면 상당히 단명한 셈이다. 조선의 왕들은 심한 격무와 운동부족, 그리고 과잉영양이라는 의학적 문제가 있었다.

왕의 주변에는 어의같은 당대 최고의 의사들과 좋은 약재 그리고 좋은 시설이 있었음에도 말이다.

보통 성인남자가 하루를 살아가려면 2500㎉가 필요하다(여성은 2000㎉). 그런데 조선의 왕들은 하루 5끼에서 7끼를 먹었다고 한다. 즉 시도 때도 없이 먹었다는 소리다.

더구나 한 끼 식사에는 보통 50가지의 맛깔난 음식이 있었다고 하니 얼추 계산해봐도 한 끼에 2500㎉ 정도 된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당뇨병, 고혈압, 동맥경화 같은 성인병이 필연적으로 따라왔으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영조는 다른 왕들의 평균수명보다 2배는 더 오래 살았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영조는 하루에 정확히 3끼만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반찬의 가짓수도 대폭 줄이고 주로 채식과 잡곡위주의 식사를 했다고 한다. 이는 서민출신의 어머니에게서 큰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한다.

건강한 몸을 바탕으로 영조는 51년이란 오랜 기간 왕의 자리에 있으면서 경제·정치 등 여러 방면에 걸쳐 조선 후반기의 기둥과 같은 역할을 했다. 영조의 장수비결은 우월한 유전자가 아닌 저칼로리 식사에 있었다.

반면에 세종은 어려서부터 매끼마다 고기와 단것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한다. 심한 비만이었고 운동은 하지 않았으며 엄청난 대식가였다고 한다.

이미 30대에 당뇨병이 시작된 세종은 마지막 10년간 거의 실명 상태였고, 뇌혈관질환이나 피부병과 같은 당뇨합병증으로 병석에 누워있었기 때문에 태자인 문종이 10년간이나 사실상 섭정을 했다고 한다.

현재 선진국의 상징이랄 수 있는 OECD 국가들마다 비만으로 골치를 앓고 있다. 원인은 너무 많이 먹는다는데 있다. 많은 학자들이 매달려 비만치료제를 개발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예외 없이 부작용이 심각하다.

이미 목구멍을 통해 넘어간 음식은 거의 완전분해흡수가 돼 무한 저장되면서 인류가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질병들을 초래하고 있다. 이제 성인병은 생활습관병으로 고쳐 부르는 추세이다.

마음껏 먹고 마음껏 즐기려는 세대여! 아름답게 살았던 여배우 오드리 햅번(Audrey Hepburn)의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당신의 입술을 아름답게 하려거든 남을 칭찬하는 말을 해라. 당신의 몸매를 가꾸려거든 당신의 음식을 남에게 나눠줘라.”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