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대전지역 ‘달동네’ 가보니
더위에 기력없어 밥도 못해
영양실조 등 생명위협 불안
대사동 경로당 고작 4개 뿐
더위피할 공간 턱없이 부족
대전시 실질적 대책마련시급

▲ 낮 기온이 30℃를 웃도는 찜통더위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28일 대전 중구 대사동 보문산 자락 달동네의 한 가정에서 어르신이 문을 모두 연채 선풍기 바람과 부채에 의지해 더위를 이겨내고 있다. 허만진 기자 hmj1985@cctoday.co.kr

낮 최고 기온이 31℃을 웃돈 28일 본보 취재진은 대전 중구 대사동 보문산 밑의 달동네를 방문했다. 한낮 뜨거운 열기 속 동네 어귀에 놓인 평상에서도 마을 노인들의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관련기사 2면

이날 취재진과 함께 이 곳을 찾은 장수진 대사동주민센터 사회복지사는 “평소라면 동네 어르신들이 이곳에 모여 계시는데 요즘 워낙 날씨가 더워서 평상도 쉼터 역할을 못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언덕 위에 촘촘히 들어선 작은 집들 사이의 비좁은 골목은 노인이 아닌 20대 젊은이들도 오르기 전에 아찔할 만큼 가팔랐다. 울퉁불퉁한 콘트리크 길 위로 뜨거운 열기가 올라왔다. 그 길 지나 한 쪽방집에 도착하자 할머니 두분이 어두운 방안에서 선풍기로 더위를 식히고 계셨다.

6.6㎡ 남짓의 작은 방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는 A(80) 할머니는 “이렇게 날이 더우면 기력이 떨어져 밥해 먹는 것조차 고역”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여름에는 더위도 더위지만 이로 인한 기력 저하와 영양 부실이 더 큰 문제라는 것.

A 할머니의 친구인 B(80) 할머니 역시 “더운 여름에는 기력이 없어 하루에 한끼도 겨우 챙겨 먹을까 말까 한다. 당뇨가 심해 약을 먹어야 하지만 밥을 삼시세끼 해먹기 어려워 그냥 빈 속에 털어 넣는다”고 털어놨다.

할머니들은 이런 점을 극복하려 경로당에 모여 함께 밥을 해먹지만 이 마저도 마을 노인 숫자에 비해 경로당이 턱없이 부족해 이용에 어려움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대사동의 노인 인구는 전체(6553명)의 19.5%인 1279명이지만 이 동네의 경로당은 단 4개소에 불과하다.

경로당 공간도 매우 협소해 1개소당 40~50명만 겨우 수용하는 형편. 마을 가운데 자리잡은 대사경로당 역시 10여㎡ 정도의 작은 2층 공간을 50명이 넘는 어르신들이 더위와 추위를 피하고 함께 밥도 해먹기 위해 사용하고 있었다.

폭염을 피해 경로당을 찾은 C(85) 할머니는 “많은 마을 노인들이 경로당 회원으로 들어오고 싶어하지만 경로당이 워낙 비좁아서 받아주고 싶어도 더 이상은 받아줄 수가 없는 형편”이라며 “마을 경로당 수가 워낙 적다보니 좀 떨어진 곳에 사는 노인들은 다리가 아파 못 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 마을에서 2번째로 고령자인 D(88) 할머니는 “이곳은 특히 노인이 많이 사는 동네이지만 경로당 수가 적은데다 시설마저 비좁고 형편없어 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에는 특히 불편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시가 노인 많은 곳에 경로당도 더 많이 지어주고 했으면 좋겠는데 이 쪽은 돈 없는 동네라 그런지 높은 사람들이 제대로 신경 써주지 않는 것 같아 서운하다”며 뼈 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대전시가 최근 폭염에 취약한 계층을 위해 ‘특별보호대책’을 마련, 시행 중이라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로 지역 내 소외계층의 여름은 그 어느때보다 덥고, 잔인한 해를 보내고 있었다.

최예린 기자 floye@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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