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권 광역단체장 명사 대담]
안희정 충남도지사 - 유흥식 주교(천주교 대전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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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치스코 교황의 당진 솔뫼·해미성지 방문을 앞두고 자리를 함께 한 유흥식 주교(왼쪽)와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충남 천주교의 역사 및 교황 방문의 의미 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충남도 제공

프란치스코 교황의 당진 솔뫼·해미성지 방문을 앞두고 유흥식 주교(천주교대전교구장)와 안희정 지사가 만났다. 유 주교는 안 지사를 보자 재선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포옹으로 반가움을 표시했다. 이어 두 사람은 교황 방문과 관련 충남 천주교의 역사 및 교황 방문의 의미 등 여러 가지 얘기를 주고 받았다.

안희정 도지사(이하 안): 다시 도지사 되어 뵈니까 좋으네요.(하하)

유흥식 주교(이하 유):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네요.

안: 선거 때 어떤 어머니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선거운동기간 중 어느 시장에 갔더니 좌판 벌려놓은 어머님한테 저 누군지 아시겠어요? 그랬더니 몰라요. 그러더라구요. 이제까지 4년 동안 도지사 본 사람이에요. 한 번 더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랬더니 얼굴을 슬쩍 보더니 '잘라서 잘하겠네' 하더라구요.(하하) 그런데 저녁에 와서 생각해보니 그 말씀이 저한테 더 큰 격려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런데 순간적으로 슬쩍 저를 쳐다본 뒤 다시 하던 일을 계속하며 그렇게 말씀하는데 순간적인 판단과 자기호의를 나한테 베풀이 준 그것이 계속 선거운동 내내 아주 힘이 됐어요.

유: 삶의 지혜죠. 그런 지혜로운 분들이 많이 필요한 시대예요.

안: 2010년도에 주교님을 뵈러 갔을 때 저한테 편지 써서 격려해주셨는데 기억나시는지?

유: 제가 편지를 썼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때 제가 웃으면서 “이 편지를 그냥 드릴까요? 아니면 읽을까요?” 했더니 저보고 읽으라고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 편지를 읽었죠. 편지를 읽었는데 편지를 들으시면서 고개를 숙이신채로 여러 번 눈물을 보이시는 걸 봤거든요. 그래서 제가 보면서도 참 여리고 순수한 분이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안: 저한테 정성스럽게 사실은 기도를 해 주신 거죠. 형식은 편지지만 사실상은 저를 위해 기도를 해 주신 건데 그 기도가 제가 지내왔었던 많은 고통과 두려움에 대해 위로해 주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주교님이구나 싶더라고요. 2010년 선거운동할 때 공주 황새바위를 가보라는 분이 있어서 갔었습니다. 그때 석양 무렵이었는데 거기가 기둥이 있고 창문은 없더라고요.

경당 안에 들어가니까 석양을 받아서 어두컴컴한데 기둥 기둥 사이로 창문형태로 빛이 들어와요. 그때 경당에 새겨져 있는 순교자들의 이름을 보는데 그냥 누구누구 세례명 적힌 것은 감흥이 없어서 쭉 읽다보니까 갑자기 말자, 이 아무것이, 누구네 며느리, 이렇게 써져 있는 거에요.

그걸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나더라고요. 도대체 그냥 이 아무것이, 김 아무것이, 개똥이 뭐라고 써 있는 저 사람들이 저렇게 죽어갔다는 생각을 하니까 그게 너무 가슴 아프더라고요.

그래서 도지사 되고 나서 주교님 찾아뵙고 신부님들한테 순례자길 만들어서 우리 근현대사에 있었던 그 많은 아픔을 사람들과 공유하자고요. 그 아픔을 공유하면 자기가 정화되잖아요. 그래서 그런 길을 만들자고 시작했는데 어떻게 우리의 그런 노력이 갸륵했는지 교황님도 오신다 그래서 정말 좋아요.

유: 제가 3월말 충청도 출신 명사모임인 백소회에 초청받아 갔었어요. 거기서 교황님 오시는 것과 당진 솔뫼와 해미성지의 역사를 조금 말씀 드렸는데 죄송한 말씀이지만 충청도 명사님(명사꾼)들도 솔뫼와 해미성지를 거의 모르고 있으셨어요.

안: 그래요?

유: 지금 지사가 말씀하셨지만 인간만의 역사가 있거든요. 역사를 모르면 인간을 모르죠. 그리고 우리가 어떤 역사적인 과정을 통해서 이뤄지지 갑자기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니까 그런 면에서는 이 내포지역 가톨릭신자들의 역사가 대단하거든요.

가톨릭이 처음 들어왔던 18세기는 유교적 계급제도가 굉장히 심했잖아요. 그런데 거기서 황일광 같은 분은 백정이었어요. 그런데 황일광이 신자가 되면서 정약종 집에서 같이 살았어요. 그 신분으로 양반과 산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거든요.

안: 당시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죠.

유: 그러니까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나한테는 땅에도 천당이 있고 죽은 뒤에도 천당이 있다. 이미 계급을 넘어서는 평등의 삶을 살았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내포지역에서는 가톨릭 신앙이 평등 사상을 통해 서민층으로 전해졌습니다.

안: 도내에 각종 성지와 줄무덤이 많은데 다른 지역도 같나요?

유: 제가 교황님께 편지를 드릴 적에도 “실은 교황님께서 오실 줄 몰랐거든요”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만 제가 생각한 것은 아시아 청년들과 한국청년들이 성지에 모여서 며칠을 지내게 될텐데, 그들에게 최고의 모델로 본 것은 내포 지방에서 순교하신 순교자들이었거든요.

예를 들어 김대건 신부님은 이 세상에 산 기간이 25년 26일이에요. 지금 생각하면 어른 축에도 끼기 어려운 나이였지요. 그런데 15살에 마카오로 가서 마카오는 중국땅이니 중국말을, 스승들은 프랑스 분들이므로 불어를, 모든 학문은 라틴어로 공부하셨고, 영어도 배우셨습니다.

김대건 신부님이 잡히신 후에 박학한 모습이 너무 아까운 거예요. 조정에 들어오라고 회유를 하죠. 배교만 하면 높은 자리주겠다고요. 그러니까 그분은 나한테 천주교를 믿도록 인정만해라. 그러면 내가 배운 모든 걸 나라를 위해서 쓰겠다고 하십니다. 김대건 신부님이 25년 26일 살고 순교하는데, 이분은 지금 우리 문화사적으로 봐도 가장 먼저 서양문물에 능통했던 분이십니다.

안: 전 세계 주교님들이 몇 분이세요?

유: 현역이 한 3500~3600명쯤 되고 은퇴한 분들을 합치면 한 5000분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안: 그런 주교님 중에 한 분인 우리 주교님이 교황님을 만나 뵙고 교황님을 여기까지 모셔왔으니까 우리 주교님이 제일 센 분 같은데.(하하)

유: 센 사람이라기보다는 조그만 도구 역할을 한 것뿐입니다. 교황님께서 아르헨티나에 계실 적에 한국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가지셨다고 저한테 말씀하셨거든요. 그리고 한국음식도 종종 잡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한국이 평신도에 의해 신앙이 전파됐고, 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사실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또한 한국이 아시아에서 신앙심도 있으면서 나라가 발전한 것도 알고 계셨지요. 보통 경제적으로 발전하면 신앙은 뒷전으로 밀리거든요.

안: 이번에 교황님 오시면 어쨌든 우리 순례성지 집회하고 해미성지 집회만이 유일하게 전세계 중계되잖아요. 전 그렇게 들었거든요.

유: 교황님이 오시면 모든 일정이 다 라이브로 생중계를 할 것으로 압니다.

안: 제가 듣기론 오후 4~5시 집회 시간은 로마 교황청 시간으로 중계하기 가장 좋은 시간이라고.

유: 그러니까 8월 15일 대전에서 오전 10시30분 미사를 봉헌하시고, 16일 오전 10시30분 광화문에서 시복식을 거행하십니다. 15일 솔뫼에서 청년들과의 만남과 17일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미사는 오후 5시에 거행합니다. 유럽에서 교황님의 청년들과의 만남을 오전 시간에 더 많이 시청할 수 있도록 우리의 시간을 오후로 잡았습니다. 우리가 오전을 원했지만 교황님의 청년들과의 만남을 더 많은 세계인들이 시청할 수 있도록 오후 시간을 고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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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란치스코 교황의 당진 솔뫼·해미성지 방문을 앞두고 자리를 함께 한 유흥식 주교(왼쪽)와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충남 천주교의 역사 및 교황 방문의 의미 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충남도 제공

안: 그래서 제가 어떻게든 간에 그 카메라 앵글을 교황님을 예쁘게도 잡아야겠지만 해미성지와 주변 좀 예쁘게 좀 잡아달라고 로비하고 있어요. 우리 충남에 많은 분들이 오시게 하려고.

유: 교황청 TV가 있습니다. 다 갖춰서 하죠.

안: 해미읍성과 해미성지, 순례성지가 방문지이고 그 방문지를 왜 방문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시아 청년대회도 있지만 그 방문지가 가지고 있는 특성에 대해서는 어쨌든 간에 다 설명해 주실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그런 것들이 지역에 있어서는 많은 분들한테 우리 지역의 역사에 대해서 많이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유: 지금 지사께서 말씀하신 대로 교황님은 다녀가시면 끝이잖아요. 그렇다면 그분이 오시는 것도 그냥 며칠 다녀가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말씀하신 메시지도 있고 그분의 삶의 모습, 이런 것을 우리가 이어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죠.

이쪽에 가톨릭교회가 들어와서 순교했던 그런 분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 정말 사람을 소중히 여겼거든요. 그분들로 봐서는 그렇게 억울하게 죽는데도 자기들을 죽인 사람들에 대한 원한이나 이런 것이 없이 오히려 저 사람이 아직 잘 모르니까 그들을 위해 기도해줬잖아요.

이것이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들이 조금 더 폭넓은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래서 교황님께서 다녀가시는 게 역사적인 시점이 되고 이 기회를 통해서 우리가 한 계단 더 오르기 위해서는 좀 더 노력을 해야 되는 일이란 생각이 들죠.

안: 이를 기회로 교회와 마을이 마을공동체로 접촉력이 넓어지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제가 도내 성지를 다니면서 이 순례자의 길을 통해 요즘 유행하는 말로 힐링하는 곳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 듭니다. 내포지역은 근현대사에 많은 애국자들의 생가가 많은 곳이여서 그걸 연결하는 내포문화 숲길·역사길들을 각 자치단체에서 많이 조성을 해놨는데 이 길들이 양극화, 비정규직, 일자리 불안, 정년단축, 고령화 등으로 고통을 느끼는 많은 분들이 인생의 평화에 대해 깨닫는 계기였으면 어떨까 싶어 앞으로 길 조성하는데 계속 신경쓸 예정입니다.

유: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그냥 건강을 위해 힐링으로 걷는 것과 의미가 있고 역사가 있는 것은 다르거든요. 우리는 굉장히 좋은 자원을 가지고 있고 교황님께서 이걸 알려주셨으니까 그래서 저희들도 교황님의 뒤를 따르면 좋겠어요.

교황님은 신자들에게 신발에 먼지나 흙, 진흙이 묻어도 나가야지, 깨끗하게 방안에 있지 말라 그러잖아요. 얼마전 22사단에서 임병장 사건 났는데 지금 같은 사회구조 같으면 불행하게도 이런 사건들이 더 일어나면 일어났지 줄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로서는 두 가지 차원이거든요. 하나는 정상적인 사람들이 더 잘 살도록 도와주고, 부족한 사람들은 더 잘 살도록 위로 끌어 올려야 하죠. 교황님께서 오시는 이유가 청소년들이기 때문에 청소년들의 교육장소가 매우 중요합니다. 성지들이 많은 충청도 지역에 교육장소가 마련된다면 청소년들이 순교자들의 삶을 본받도록 한다면 매우 좋을 듯합니다. 이런 보물들 다시 더 갈고 닦도록 교황님께서 도와주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 지난 대선 때부터 박근혜 대통령이나 문재인 후보 모두 다 그동안 우리가 대통령선거에서 볼 수 없었던 행복이라는 단어를 들고 나왔어요. 사실은 전통적 정치 담론에서 행복하게 해줄게요 보다는 부자되게 해줄게요가 그동안의 모든 공약이었어요.

그런데 행복하게 갑시다라고 하는 단어가 드디어 우리 사회에 등장했거든요. 그런데 핵심적으로는 행복의 개념은 사람이 실질적·정신적으로 행복해야 돼요. 그래서 이 정신적 행복을 우리 주교님이나 종교에서는 깨달음과 구원의 문제로써 말씀해 주시는 거고, 우리 평범한 시민들이 다양한 입장에서는 하여튼 간에 우리 부모님은 늘 그랬어요.

위보고 살면 불행해 아래 보고 살아야지. 늘 그 얘기를 해 주셨는데 우리가 느끼는 것이 너보다 못한 사람을 봐야 나눔이 실천이 되고 이웃 간에 우애와 연대가 시작되거든요.

그런데 나보다 못한 사람을 봐야만 나는 저 사람보다 있으니까 도와줘야 되겠다는 마음이 들거든요. 그래서 이런 자산이 많은 사회가 우리가 말하는 복지공동체도 만들어지고 다 이런 것이 어느 세월에 세금 다 내서 그 복지 수요를 다 채워 주겠어요.

그래서 제가 3농혁신을 하는 것도 농민들이 실질적으로 어떻게 하면 좀 더 부자될까라는 것도 필요하지만 어떻게 하면 국민들한테 내가 만든 농수축산물이 신뢰를 얻게 할까 이게 우리 관건이다.

그래서 생산혁신을 통해서 국민들한테 신뢰를 얻으면 그걸 지역에서 우선 더 사 먹어줄 테고 그러면서 유통구조에 대한 혁신도 일어날 거고 이렇게 이어지자는 것이어서 저는 이번에 교황님 방문을 계기로 우리가 다시 조명하게 되는 150년전 우리 선조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 우리가 더 깨닫는 그런 중요한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고 그래서 충청남도의 순례자의 길들이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에게 치유의 길이고 어떤 깨달음의 길로 작동을 하면 저는 그것이 대박날거라고 봐요.

유: 그래서 아까도 제가 말씀을 드렸듯이 교황님 잠깐 다녀가시지만 더 큰 숙제는 그분의 메시지고 그분의 삶을 어떻게 우리가 더 계승 발전시키느냐입니다. 이번에 교황님 오시는 것이 청년들을 위해서 오시잖아요. 그러면 좀 청년들을 위해 뭔가 했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 있죠. 예수님 오셔서 하신 거 보면 여러 가지 있지만 결국 사람 소중하게 여기고 사람 귀하게 여긴 것입니다.

제가 지난번 교황청에 갔을 때 어느 분이 그랬어요. 교황님이 한국에 왜 오시는 걸 바라고 있고, 무슨 효과가 있느냐고. 제가 그랬어요. 이번에 한국에 오시면 이번에는 우리 한국도, 교회도, 세계로 나가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유럽도 독일이나 프랑스나 영국 정도를 상대해야 우리에게 맞고 필리핀, 캄보디아, 베트남 등 동남아를 우습게 알았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어디서 돈 벌었어요? 이제는 아시아에 있는 젊은이들도 받아들이고 도울 수 있어야 된다고 봐요.

안: 맞아요. 명실상부하게 아시아 시대로 진입했거든요. 지난 해방 이후에는 사실상 미국시대, 대부분 미국에다가 떼다 팔고 미국으로부터 차관과 원조 물자를 받았고 그렇게 50년 산업화 과정을 거치고, 90년대에 동서냉전이 깨지면서 중국이 급부상 했죠.

우리 대한민국에게는 아시아 교역량이 지금 전체 교역량 중에 60%에 육박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아시아인으로 우리가 살아야 되거든요. 아시아의 교역고대왕국이었던 백제의 후손답게 우리 충남도가 환황해 아시아권역을 이렇게 포괄해 내는 그런 진취적인 도정을 만들어 나가는 아시아 청년대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지고 있어요.

유: 그런 면에서는 맞아떨어지는 겁니다. 지금까지는 아시아에 있는 다른 나라들이 한국이 그냥 괜히 별로 잘난 것도 없으면서 그냥 으스대고 뽑냈지요. 한국사람이 국제회의 나가면 영어를 못하니까 제대로 표현을 못하지요.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는 물에 기름돌 듯 하면서도 다른 나라 사람들을 우습게 보고 뒤에서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아시아 청년대회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가 아시아 청년들한테 줄 보물이 뭐냐 물어오기에 ‘순교자’라고 답했습니다. 아시아 사람들이 지금까지는 한국이 아시아의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나오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어요. 우리 담당 신부님이 그 소리 듣고 솔직히 고백하며 용서를 청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아시아 당신들을 너무 깔봤다, 돈 조금 벌었다고 국민소득이 어떻고, 우리보다 색깔이 검고 등등하며 아시아인들을 굉장히 깔봤으니 용서하라고 말했습니다. 이제 앞으로 아시아를 정말 형제처럼 생각하겠다. 잘해 나가자. 그 말을 통역하던 선교사가 통역을 하다가 울어버린 거예요.

왜냐하면 자기도 살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거든요. 이 말을 다 들은 아시아인들이 그 얘기를 듣고 다 울어버렸어요. 그래서 얼음이 깨져버린 거예요. 그 다음부터 프로그램 준비하는데 모든 문제들이 술술 부풀려나갔어요. 도지사님께서 지금 말씀하신 대로 교황님 방문이 정말 한국이 조금 더 아시아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같습니다.

진행=김도훈 세종충남총괄본부장

정리=이권영 기자 gyl@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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