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용웅 부산시 명예통역관
본보에 14개 정부부처 誤記 제보
청와대 비롯 공공기관·지자체 등
영문 홈페이지 오류잡는 '족집게'
사이버 독도 표기 수정 대표 성과

▲ 오용웅 부산시 명예통역관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하거나 우리나라를 알기 위해 가장 먼저 찾는 것은 당연히 홈페이지”라며 “건강이 허락되는 날까지 대한민국 영문 홈페이지의 오류를 바로잡는 일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재훈 기자 jprime@cctoday.co.kr

“국제적으로 대한민국을 알리는 영문 홈페이지의 영문표기 오류를 바로잡는 것은 우리의 문화적 품격을 높이는 일입니다.”

청와대를 비롯해 정부부처, 정부투자기관, 일선 지방자치단체의 영문 홈페이지 오류를 바로잡는 '족집게'로 널리 알려진 오용웅 부산시명예통역관(72).

오 통역관이 충청투데이에 제보해 영문 홈페이지의 오류를 바로잡은 곳도 청와대와 국회, 국립민속박물관, 대전시, 충남도, 충북도, 세종특별자치시를 비롯해 14개 정부부처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8월 12일 1면·8월 19일 2면·8월 26일 2면·사설: 8월 20일자 21면>

특히 정부 16개 부처 영문 홈페이지의 경우 문화체육관광부와 보건복지부를 제외한 모든 부처의 영문 표기에 오류가 있어 아직 영문 홈피가 구축되지 않은 해양수산부를 제외하면 13개 부처가 국제적인 망신살을 샀다.

문제는 2000년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가 고시한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을 1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외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오 통역관의 노력에 의해 상당수 정부부처 및 행정기관의 영문표기 오류가 대부분 수정되고 있는 과정에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예컨대 국가명을 표기할 때는 대문자와 소문자의 차이도 엄청난 오류를 가져온다는 게 오 통역관의 지적이다. 이를테면, China는 중국을 의미하지만 china는 '자기(porcelain·도자기)'를 뜻하며, Japan은 일본을 지칭하지만 japan은 '옻 칠(漆)', 즉 '일본제 도자기'를 일컫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에 대한민국을 알리는 '얼굴'이라 할 수 있는 영문 홈페이지의 잘못된 표기를 바로잡는 일은 게을리해서는 안되는 이유다. 이처럼 오 통역관이 영문 홈페이지 표기의 오류를 바로잡는 ‘아르고스’를 자청한 것은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외국어대학 영어과 60학번으로 영어와 첫 인연을 맺은 후, 신발업체에서 30년가량 수출 에이전트로 활약하다 은퇴하고 1998년 12월 부산시 명예통역관으로 위촉되면서부터다. 그는 이 때부터 부산시는 물론, 정부부처와 행정기관, 일선 자치단체의 영문 홈페이지를 뒤지면서 수많은 오류를 찾아냈다.

특히 2009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열린 부산 남포동 광장에 국내외 유명 배우와 감독 6명의 핸드 프린팅이 새겨진 동판의 영문 오류를 바로잡은 것은 잊지못할 편린으로 남아있다. 동판에 새겨진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절단기로 동판을 잘라내고 덧대는 엄청난 수작업이 뒤따랐지만, 부산시가 잘못을 고치려는 의지를 보이기까지는 쉽지 않은 결단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독도의 대표 홈페이지인 ‘사이버 독도’의 표기상 오류를 수정한 것도 대표적인 성과 가운데 하나다. 독도의 위치가 '게영스낙북도(Geyoungsnagbuk-do)'에 있다고 표시된 부분을 '경상북도(Gyeongsangbuk-do)'로 수정했다.

10여년 전 대장암 수술을 받아 몸은 여전히 불편하지만, 대한민국 모든 기관의 오류를 바로잡아 외국인들에게 ‘망신’을 당하지 않는 그 날까지 영문 홈피의 오류를 바로잡는 일에 소홀할 수 없다는 그는 지금도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각종 기관·단체의 영문 홈피를 검색하고 있다.

공공기관 영문 홈피의 기관장 인사말에 'Message(메시지)’를 ‘Massage(마사지)'로 표현하고도 낯뜨거움을 모른 채 외국인들에게 대한민국의 국격을 말할 수 없다는 열정에 기인한다. 그렇다고 그에게 보수를 주는 기관도 없다. 이른바 대한민국을 위한 ‘무료 봉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외려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공무원들의 호된 시선이다. “왜 긁어 부스럼을 만드냐”는 일종의 호통이다.

하지만 오 통역관은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는 공익 제보자의 역할에 한치의 부끄러움이나 망설임이 없다. 그의 이 같은 열정에 힘입어 청와대의 영문 홈피는 물론 국무총리실, 국회, 대법원, 감사원 등 정부 주요 기관의 영문 홈피의 잘못된 표기가 바로잡혀 가고 있지 않는가.

미국 닉슨 대통령을 물러나게 했던 워터게이트 사건에서도 휘슬 블로어(whistle-blower)의 위력이 증명됐고, 전세계 폭로전문사이트인 위키리크스도 공익제보자인 딥스로트(Deep Throat)의 역할이 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 공공기관을 방문했을 때 식당을 'Resting Room(화장실)'이라고 잘못 표기한 것을 보고, 이 일을 멈출 수 없었다는 게 그가 브레이크 없는 질주에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그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는 이도 적지 않다. 지난 4일에는 영문 홈피의 정확한 정보제공 및 잘못된 표기를 바로잡는 데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인 공적을 인정받아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감사장을 받았다. 2010년에도 이 같은 공적으로 청와대로부터 감사장을 받기도 했다. 앞서, 2002년 제14회 부산 아시안게임의 성공개최를 위한 홍보위원으로 활동한 공로를 인정받아 표창장도 수상했다.

그에게 영문 홈피의 오류를 바로잡는 일은 이제 황혼기에 찾아온 또 다른 직업(?)이 됐다.

그는 요즘 바깥에 나갈 때는 늘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닌다. 그리고 영어 표지판이나 문화재 설명문, 관광안내판 등을 유심히 살펴본다. 각종 기관·단체에서 발행하는 관광안내지도나 홍보책자도 꼼꼼히 살펴본다.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사진을 습관적으로 찍는다. 그리고 해당기관에 즉각적인 수정을 요구한다.

늑장을 부리면 언론사를 찾아가 수정을 의뢰하기도 한다. 늑장행정·직무유기를 눈뜨고 지켜볼 수 없는 것은 외국인들의 ‘비아냥’이 겁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정부 주요기관의 영문 홈피도 이 지경인 데, 지방자치단체나 산하기관의 사정은 안 봐도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관(官)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민간차원의 협력 등 범 국민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오 통역관의 지적이다.

그는 대법원의 영문 헌법 표기의 오류를 바로잡는 일도 시급하다고 꼬집는다. 대법원 홈페이지에 게시돼 있는 영문 헌법 제3장 국회 제65조 탄핵 제1항을 보면 the National Election Commission(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 표기해야 할 기관명이 the Central Election Management Committee로 잘못 표기하는 등 여전히 오류가 적지않기 때문이다.

오 통역관은 “문화체육관광부의 경우처럼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는 전담 직원(김수미 사무관)을 내세워 산하기관의 오류까지 바로잡아야 한다”며 “건강이 허락되는 날까지 대한민국 영문 홈페이지의 오류를 바로잡는 일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하거나 우리나라를 알기 위해 가장 먼저 찾는 것은 당연히 홈페이지”라며 “나라 망신 시키는 오류를 방치할거면, 뭐하러 홈페이지를 만들어 놓느냐”고도 지적했다.

대담 = 나인문 문화과학부장(부국장) nanews@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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