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보다 부엌살림 경쟁하자
냉전시대, 체제 우월성 가른 논쟁
북한도 핵무기보다 '부엌 행복'을

1950년대는 미국과 소련이 대결하는 냉전시대의 정점이라 할 수 있었다.

한국전쟁은 휴전이 되었으나 남·북 긴장이 계속되고 있었고 인도차이나 반도를 비롯 곳곳에서 미·소의 대립이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미사일 개발·핵실험·잠수함 건조 등의 군비 경쟁을 촉발시켰다.

이런 가운데 1959년 7월 소련 소콜니키 공원에서 미국의 무역 박람회가 열렸다.

소련에서 개최되는 미국의 첫 박람회여서 닉슨 부통령(후에 대통령이 됨)이 대표단을 이끌고 전시장에 참석했고 흐루시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도 현장을 방문했다. 미·소 양국을 대표하는 두 지도자는 세탁기, 식기 자동세척기 같은 미국의 가전제품 전시코너에서 마주쳤다. 당시 미국의 가전제품들은 소련 주부들로서는 꿈같은 것들이어서 닉슨 부통령은 자신감을 갖고 '우리 미국의 노동자들은 누구나 이 정도는 갖출 수 있다.'고 자랑했다.

흐루시초프 공산당 서기장은 소련이 미국에 앞서 스푸트니크 위성 발사에 성공한 것 등 미사일 개발을 자랑했다. 그러자 닉슨은 미사일로 경쟁하지 말고 세탁기로 경쟁하자고 응수했다. 이것이 유명한 닉슨-흐루시초프 '부엌논쟁'이다. 닉슨이 전쟁을 위한 무기가 아니라 국민들의 행복한 부엌생활로 경쟁하자는 취지의 논전은 닉슨을 일약 미국의 정치 스타로 도약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몇 해 전 남·북 이산가족상봉이 이루어졌을 때의 이야기.

남한의 동생이 북한에 있는 형을 만나러 금강산 상봉소에 갔었다. 상봉장에 나온 북한의 형은 최고급 롤렉스 시계를 차고 있었다. 형제가 몇 십 년 만에 만나 대화를 나누고 마음의 벽을 어느 정도 열었을 때 동생이 형에게 우리가 만난 정표로 시계를 교환하자고 제의했다. 그러자 형은 동생의 귀에다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것 상봉 끝나면 반납하는 시계야."

동생은 어이가 없었다.

조금 있다가 과일이 식탁에 들어왔다. 그러자 형이 '이런 수박을 샘물에 담갔다 먹으면 시원하고 맛이 좋다'고 자랑을 했다. 이에 남한의 아우가 '왜 냉장고에 넣었다 먹지 않느냐? 우리 남한에는 냉장고 없는 집이 없다.'고 하자 북한의 형이 머쓱해 하더라는 것이다.

북한에서의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을 갖추고 산다는 것은 당 간부나 특수층을 제외하고는 어려운 이야기다.

마치 이들 남·북 형제의 대화는 닉슨-흐루시초프의 부엌논쟁을 연상시킨다.

북한은 이번 3차 핵실험을 하면서 15억 달러,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2조원이나 되는 돈을 썼을 것으로 서방정보기관은 추정하고 있다. 이 돈이면 북한 주민 2500만 명의 식량으로 1년 6개월치 옥수수를 살 수 있고 10년간의 기근을 해결할 수 있는 규모다.

요즘 북한이 3차 핵실험을 자축하는 군중대회로 들떠있다. 동원된 평양시민의 인터뷰는 한결 같이 북한이 '위대한 지도자'의 덕분에 핵보유 국가로서 '강성대국'이 되었음을 경축한다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TV뉴스를 통해 이런 장면을 보면 어떻게 지구상에 저렇듯 우매한 독재국가가 대를 이어 존재하는지 북한 동포가 너무 가련하다는 생각이 든다. 국내외 보도에 의하면 북한 주민은 물론 북한당국이 떠받들고 있는 인민군까지도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는 형편에 있다고 한다. 북한 어린이의 키가 남한보다 평균 7㎝나 차이가 나고 영양실조에 결핵환자도 급증하고 있으나 의료혜택을 받지 못해 죽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소련이 망한 것은 핵무기나 미사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부엌'으로 상징되는 국민의 자유와 행복이 고갈되었기 때문이다. 북한 지도자들에게는 이런 말이 '소귀에 경 읽는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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