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글, 임용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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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부 愼言牌와 承命牌
甲子士禍(15)


임숭재는 누가 들을까 싶어 집 밖에서는 왕에게 칭신(稱臣)을 하지 않았다.

왕이 미리 기별을 하고 미행을 할 때는 세상 사람 모르게 은밀히 다녀가겠다는 의도였고, 임숭재가 그것을 모를 리 없었다.

임숭재는 왕을 별당으로 인도하였다.

열두 폭 병풍을 둘러치고 비단 금침을 깔고 팔뚝 같은 대홍초에 불을 달아 놓은 훈훈하고 호화로운 밀실(密室)은 환락장으로 그만이었다.

"매부가 나를 위하여 마음쓰는 것을 알 만하군."

"전하, 갑작스런 밀명을 받고 창황하여 군주를 영접하는 도리를 다 갖추지 못하였사온데 칭찬을 하시오니 더욱 황공하오이다."

그때 밖에서 아뢰는 소리가 있었다.

"옹주마마께서 알현을 청하옵니다."

"오! 옹주, 어서 들라."

문이 열렸다. 머리에 첩지를 꽂고 당의로 성장한 휘숙옹주가 환하게 웃는 얼굴로 사뿐사뿐 걸어 들어왔다.

"전하, 용안을 우러러 뵈온 지 오래이옵니다. 그동안 성체 평안하옵신지, 승후 아뢰옵니다."

휘숙옹주는 왕에게 절하고 승후를 하였다.

"하하하, 옹주는 나이 먹을수록 아름다워지기만 하니 어인 일인고? 우리 둘이 남매가 아니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하하."

왕은 이복 누이동생 휘숙옹주를 부신 듯이 야릇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해괴한 소리를 하였다. 휘숙옹주는 무색한 듯 임숭재의 눈치를 힐끗 살피고는 왕에게 살며시 눈을 흘겼다.

"전하께서 저희 내외를 가인례(家人禮)로 대하실 때는 농담이 지나치셔서 때로는 거북할 때가 있사옵니다."

"전하, 분부하신 대로 미인을 등대하였사오니 곧 어전에 나올 것이옵니다."

임숭재는 조금도 다른 내색을 하지 않고 말하였다.

"우리 옹주만한 미색이 아니면 퇴짜야. 알겠나?"

왕은 아직 술을 입에 대지 않은 맨숭맨숭한 정신인데도 묘한 여운(餘韻)을 끄는 농담을 던지고 있었다.

"전하께서 친히 보시면 흡족하실 것이옵니다. 소녀 같은 것은 견줄 수 없는 미인이옵니다."

"설마… 그럼 지금 곧 불러들이지 왜 뜸을 들인단 말인고?"

"목욕하고 단장하는 중인가 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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