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 개척한 '큰 호랑이' 金宗瑞
한글창제, 성삼문·박팽년 숨결도
民族魂과 융합…세종시 에너지로

세종대왕이 평생 아꼈던 황희(黃喜 1363~1452)정승은 대표적인 청백리이자 명재상으로 알려졌지만 꼭 그렇지도 않았다. 세자로 있던 양녕대군의 폐위를 반대하고 나섰으니 하마터면 세종은 황희 때문에 임금이 될 기회를 놓칠 뻔 했다. 결국 황희는 남원으로 유배생활을 떠났는데 세종은 그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귀양지에서 불러 등용했다.

그에게는 청백리로서 많은 일화를 남겼으나 남의 여자와 간통을 하기도 했고 대사헌의 자리에 있으면서 뇌물을 받은 것이 말썽이 됐었다. 세종은 황희를 파면하였지만 바로 복직시키는 등 변함없는 신임을 보여 18년간이나 재상으로 봉직할 수 있었다. 세종의 인사기준은 이렇듯 좀 실수가 있는 사람이라도 그것을 상쇄하고 남을 능력과 덕망이 있으면 버리지 않았다는 것.

세종임금이 사랑한 신하 중에는 충남 온양 출신 맹사성(孟思誠)이 있다. 황희가 병조, 이조 등 하드시스템을 관장했다면 섬세하고 예술, 문화에 대한 마인드가 풍부한 맹사성은 주로 예조, 법률 정비, 교육, 집현전을 중심으로 한 학술 진흥 등을 맡아 세종임금을 도왔다.

이들 두 정승과 함께 세종대왕의 위업을 이루는데 기둥 역할을 한 사람이 또 있다. 우리 세종시 장군면에 묘소가 있는 김종서(金宗瑞) 장군. 그의 이름 뒤에는 언제나 '장군'이라는 칭호가 따라다니지만 사실 그는 무신이 아니라 16세 어린 나이에 과거 급제하여 문신으로 입신을 했으며 유능한 학자였고 행정가였으며 '고려사'를 편찬할 만큼 역사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런데도 그가 '장군'으로 더 많이 전해진 것은 세종대왕과 의기투합하여 국경을 넓히는 등 국가 안보를 튼튼히 하였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6진 개척'. 두만강 하류에 위치한 종성·온성·회령·경원·경흥·부령의 여섯 곳에 오랑캐를 몰아내고 진을 구축함으로써 오늘날 우리나라의 국경을 지금의 두만강까지 이르게 한 것이다.

이와 같은 무훈으로 조정에서 그를 '큰 호랑이(大虎)'로 불렸다. 그만큼 위엄과 신뢰가 넘쳤고 세종대왕에게는 더없이 든든한 방파제 역할을 했다. 그래서 세종대왕이 돌아가신 후 한명회 등이 단종을 폐위하고 수양대군을 세조로 옹립할 때 제일 두려운 것이 '큰 호랑이' 김종서였고 마침내 이들에 의해 1451년 두 아들과 함께 처참하게 격살 당했다. '계유정난'의 첫 희생자였고 그로부터 300년의 세월이 흐른 영조 때 비로소 복권되었다.

이런 세종대왕의 위대한 충신이 세종시에 잠들어 있음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사육신(死六臣)의 한 분이며 집현전 학자로서 세종대왕의 사랑을 받았던 박팽년(朴彭年) 선생은 회덕 출신으로 되어 있으나 할아버지 안생(安生), 아버지 중림(仲林)의 고향이 세종시 전의면이다. 그들의 묘소도 이곳에 있다. 지금도 전의면 관정리 2구에 박동(朴洞)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바로 옛날 박팽년의 조상들이 많이 살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

그렇다면 그는 세종시 사람이다.

선생은 1455년 세조에 의해 단종의 왕위찬탈이 이루어지자 울분을 참지 못하고 경회루에 투신자살하려고 했으나 성삼문의 만류로 발길을 돌렸었다. 그 후 충청도 관찰사로 공주에서 근무할 때 왕에게 올리는 공문에 '신(臣) 박팽년'을 쓰지 않고 그냥 '박팽년'이라고만 했다. 세조의 신하가 아니며 세조의 정통성을 거부한 것이다. 단종복위운동을 추진하다 투옥돼 모진 고문을 당했지만 끝까지 세조를 '임금'으로 부르지 않고 '나으리'라 부르며 뜻을 굽히지 않다 옥사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세종시에는 금남면 달전리에 세종을 도와 집현전 학자로서 한글 창제에 큰 공을 세운 성삼문 선생의 사당도 있고 세종시 첫마을 인근에는 우암 송시열 등과 함께 기호유학 오현(五賢)으로 꼽히는 초려(草廬) 이유태 선생의 묘소가 있는데 역사공원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세종시에는 정부청사만 있는 게 아니라 이처럼 오늘 우리나라를 있게 한 역사적, 문화적 위인들의 숨결이 서려있다. 이 역사성과 국가균형의 새 모델로 탄생한 세종시가 융합을 이루면 엄청난 창조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런 역사적 작업을 세종시는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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