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환(경제부 차장)

“첫째, 매점매석 등 이익만 좇는 풍속이 유행해 민심이 흉흉해졌다. 둘째, 생산자들이 제 값을 받지 못해 생산 활동이 위축된다. 셋째, 일반 소상인은 제대로 장사를 할 수 없어 유통과 소비가 발달하지 못한다. 넷째, 상공업 활동을 하는 백성이 줄어들어 나라 경제가 번성할 수 없게 된다.”

조선 후기 좌의정 채제공이 정조에게 보고한 금난전권의 폐해에 관한 내용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21세기 글로벌 경제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도 전혀 낯설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익만을 위해 심지어 볼펜과, 골판지, 두부까지 영역을 넓히는 대기업과 막대한 자본을 무기로 골목상권에 파고드는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이 현재 우리경제에 주고있는 폐해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금난전권(禁亂廛權)은 ‘난전을 금하는 권한’으로 육의전과 시전 상인이 서울 도성 안과 도성 밖 10리 지역에서 난전을 금지하고 특정상품을 독점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조선 후기 육의전과 시전 상인들은 금난전권 등 특권을 통해 부를 축적했으며 자신들의 입지를 견고히 하기 위해 조정관리들과 결탁했다.

나라에서는 재정수입 확보를 위해 시전 상인들에게 특권을 내주고 돈을 쓸어모은 상인들은 특권을 지속하기 위해 노론과 같은 붕당에 정치자금을 대는 ‘정경유착’에 이르게 된다.

오늘날 대기업들이 정치인들에게 비자금을 상납하고 사업권을 따내 덩치를 더욱 키워가는 폐단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어찌됐든 당시 금난전권은 곧 매점매석으로 이어졌고 물품가격은 치솟았으며 난전은 시전 상인들의 탄압으로 대부분 문을 닫으면서 생산 활동이 크게 위축되는 등 많은 문제를 낳았다.

게다가 당시는 국가 정책이 중농주의에서 중상주의로 그 무게중심이 옮겨가던 시기였던지라 부의 재분배 과정에서 시전 상인들에게 너무나 많은 부가 집중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반면 일반 백성들은 금난전권의 폐해에 따른 상품화폐경제 위축으로 부의 재분배 과정에서 소외되고 엄청난 빈부격차에 시달려야만 했다.

요즘 우리경제 역시 비슷한 맥락의 갈등을 겪고 있다.

대형마트와 SSM이 골목상권을 파고들면서 전통시장과 소규모 영세상인들이 몰락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과거 시전 상인들이 금난전권을 앞세워 영세상인들의 난전을 제재했다면 오늘날 대기업들은 엄청난 자본의 새로운 ‘금난전권’을 등에 업고 애초부터 경쟁조차 될 수 없는 영세상인들의 씨를 말리고 있다.

상황이 심각해지면서 정부가 개입하고 나섰지만 이미 거대한 힘을 가진 대기업들을 제재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해 대형유통업체와 영세상인 간 상생을 위해 추진됐던 유통산업발전법이 의무휴업일 등을 놓고 갈등을 빚다가 1일 오전에야 힙겹게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을 보면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 애쓰던 조선 후기 시전 상인들의 행태가 떠오른다.

계사년 새해가 밝았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경제민주화를 최우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박근혜 당선인이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된다.

경제민주화는 독과점 완화, 경제양극화의 해소, 소수에 의한 경제 독식과 집중화 방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불공정거래방지, 문어발식 기업확장 완화 등을 빼놓고선 얘기할 수 없다.

진정한 경제민주화를 위해 조선시대 정경유착의 심각한 폐해였던 금난전권 폐지를 위해 노력한 정조의 경제개혁 의지를 새 대통령과 새 정부에게 주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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