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희 충청대학 경찰행정학과 교수

세계화라고 이름 붙여진 21세기의 가치는 국가와 국가 간의 장벽을 허물고 가치의 통합을 추구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조류 속에서 정체성을 잃은 민족 또는 국가는 생존의 기반마저 내어놓아야 될 운명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리는 경험하고 있다.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 된 지 6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선거 때마다 조상의 친일문제가 선거의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되는 것도 이러한 위기감의 반영일것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일제강점기의 잔재 청산을 부르짖으면서도 우리의 생활 속에 독버섯처럼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의 그늘을 인식하지 못하는 누를 범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감에서 필자는 우리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우리의 생활 속에 남아 있는 일본 상용한자의 무분별한 사용에 대해 지적하고자 한다. 필자는 한글 전용론자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한글과 한자의 겸용을 주장하는 입장에 서있다. 그러나 한자의 사용에 있어서도 집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현재 법학을 비롯한 사회과학 분야에서 사용되는 한자들은 일본의 상용한자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교과서는 물론이고 법전의 한자까지도 일본의 상용한자를 그대로 쓰고 있다. 이는 비단 사회과학 분야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사회 전반에 만연한 현실이다.

해방 후 초등학교 교사로 봉직하셨던 분께서 본인이 학생들에게 수업을 함에 있어서 가장 어려웠던 과목이 국어였다는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일제강점기 내내 한글을 빼앗기고 일본어를 국어로 배웠던본인에게 있어서 한글은 외국어와 같았는데 해방 후 일주일간 한글문법만 배우고 교단에 서서 학생들을가르치게 되다보니 초창기엔 제대로 수업이 진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다수의 선생님들은 한자를 의미 전달의 수단으로 사용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정자의 한자보다는 손에 익숙한 일본 상용한자를 부담 없이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행태는 세대를 넘어 답습됐고 근자에 이르러서는 이를 우리 한자의 약자로 알고 쓰는 상황에까지 이르렀으니 이 또한 부끄러운 노릇이 아니라 할 수 없다. 물론 근대화 과정 속에서 늘어난 필수어휘를 감당하기 위해 만들어진 새로운 조어는 한자의 결합을 통한 어휘들이 절대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2차대전의 패전을 잊지 않기 위해 상용한자를 1945자로 제한하고 있는 일본의 의지를 알면서도일본의 한자를 사용하는 것은 일제강점기를 겪었던 우리로서는 우리의 정체성에 대단한 혼란을 주는 일이기에 이의 청산과 더불어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무지의 행태가 세대를 넘어 답습됨으로서 근자에 이르러서는 한글과 영어의 무분별한 혼용마저 이루어지고 있으니 우리의 문화와 우리의 정신은 어디로 실종되어 가고 있는지 확인조차 못할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이 나라의 문화를 선도해 나간다는 식자층에서 더욱 만연하고 있으며, 일각에서는 세계화에 걸맞게 한글을 포기하고 영어를 국어로 삼자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으니 경계할 노릇이다. 언어는 그 나라 국민의 정신을 형성하는 단초가 된다. 또한 언어는 정보의 공유를 위한 가장 대중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견지에서 우리 조상들은 온 국민이 공유할 수 있는 우리의 글을 만들어 발전시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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