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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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기 힘들고 바쁜데 시(詩)가 무슨 소용 있느냐고 묻는다. 재미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시는 어렵고 고리타분할뿐더러 알쏭달쏭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는 여러 문화 창작물 가운데 가장 역사가 길고 삶 가까이서 성장해왔다. 영상미디어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시가 누려온 종전의 위상과 영향력이 많이 쇠퇴했지만 시의 힘은 여전히 우리 주위에 포진하면서 위로와 활력, 새로운 느낌의 공감대를 선사하고 있다.

나는 시를 썼지요./ 그러나 바람에 날아가 버렸어요./ 나는 시를 썼지요./그러나 빗물에 지워져 버렸어요./ 나는 시를 썼지요./ 그런데 그걸 잊어버렸어요./ 그래서 나는 시를 다시 썼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쓴 시는 간직하고 있습니다. - '어떤 시' 전문

프랑스 파리 시내버스 뒤쪽 출입구에 붙어있는 패널 시화 작품이다<사진>. 우리나라에서도 지하철역 등에 기성시인들의 시를 붙여놓은 곳이 더러 있지만 대체로 교체시기가 신속하지 않고 마지못해 모양새로 갖추어 놓았다는 느낌이 강하게 풍긴다. 파리 시내버스에 게시한 시화는 내용도 다양하고 어린이부, 성인부 등 각 부문별로 정성스럽게 시화로 만들어 선보이고 있다. 위에 인용한 시는 2012년 콩쿠르에서 뽑힌 어린이 부문 그랑프리 작품인데 단순하고 소박한 어휘반복 속에 순수한 동심이 묻어난다. 이런 게 시가 아닐까.

나름의 감성으로 생각은 떠오르지만 삶에 쫓기며 한 뼘의 여유를 가지지 못해, 또는 시에 대한 선입관으로 계기가 이루어지지 못할 뿐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시적 재능은 잠복하고 있다.

시내버스 출입문에 문학콩쿠르 입상작을 붙여두는 다른 나라 문화감각이 부럽다. 촘촘히 광고로 도배해 놓은 우리 대중교통 운영기관에서 눈여겨볼만하다. 우선 대전시, 충남북도가 후원하는 백일장 대상, 최우수, 우수작 등 입상작을 번갈아가며 시내버스나 지하철에 큼지막하게 걸어놓았으면 좋겠다.

시는 읽고 나서 그냥 "좋다!"하고 느끼면 충분하다. 그런 걸 가지고 주제, 소재, 지은이의 의도 등을 따져가며 "밑줄 쫙" 식으로 분석, 해부하던 입시공부 기억이 시에 대한 부정적인 관념을 부추기지는 않을까. 삶이 팍팍하고 더위가 짜증날수록 여유를 찾아 시 한편을 읽어보자. 각급 지자체에게는 시민들에게 그런 문화서비스를 제공할 의무가 있지 않겠는가.

<논설위원·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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