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 연합뉴스 제공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지 꼭 49일 만에 압수수색을 당한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사진>의 영욕은 여러 면에서 주목을 끈다. 프랑수아 미테랑, 자크 시락 등 좌파, 우파 출신 노회한 전임자들의 20년 넘은 집권에 염증을 느끼면서 새롭고 젊은 리더십을 갈망했던 프랑스 국민들은 5년 전 50대 초반의 사르코지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정치인들의 프라이버시에 비교적 관대한 편인 프랑스 사회의 용인범위를 교묘하게 넘나들면서 톡톡 튀었던 그의 캐릭터와 사생활, 언행은 한동안 신선해 보이기까지 했다. 사르코지라는 이름이 주목을 끈 것은 2007 대선 몇 해 전 내무장관으로 재임하던 기간 발생한 파리 근교 난동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주로 아랍과 아프리카계 이민자 자녀들이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서 불특정 다수를 향한 불만과 증오를 폭력행위로 표출했을 때 사르코지는 '톨레랑스 제로' 즉 '관용은 없다'라는 기치를 내세우며 강경대응으로 일단 진압에 성공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헝가리 이민 2세 사르코지가 프랑스 공화국의 대통령으로 선출된 사례는 다문화 사회의 원조 프랑스에서는 별로 특별한 일이 아니다. 페루에서도 일본계 후지모리가 대통령이 된 적도 있고 점차 세계는 출신지역이나 혈연보다는 능력과 정치역량을 따지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 앞으로 몽고 이민자 후손 또는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다문화 가정 자녀가 우리나라 대통령이 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줄곧 예상은 했지만 올랑드에게 패배한 뒤 사르코지의 거취는 묘한 구석이 있었다. 알쏭달쏭 상징적이고 우의가 담긴 발언은 주로 측근 브리스 오르트푀 유럽의회 의원을 통하여 노출되었다. 여론과 언론을 향해 가슴에 맺힌 말을 토로하는가 하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 뭔가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포착되었다.

데스탱, 미테랑, 시락 등 전임대통령들이 크고 작은 뇌물 스캔들로 구설수에 오르거나 수사를 받아온 전례를 따르는 것일까. 이제 사르코지의 대선자금 수수의혹은 사법부의 판단으로 넘어갔다. 이주 필리핀 여성이 국회의원이 되고 다문화 출신자들이 기초의회 의원으로 뽑히는 이즈음, 이민 2세 전 프랑스 대통령의 행로는 다문화 사회가 급속히 진행 중인 우리로서도 관심 있게 지켜볼 만하다.

<논설위원·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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