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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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은 흐르고/ 우리 사랑도 흘러만 간다/ 기억해야 하는가/ 기쁨은 언제나 고통 뒤에 오는 것임을/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부분

이렇다 할 특징 없는 흔한 다리 하나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애끓는 사랑의 하소연을 겹쳐놓은 아폴리네르의 감성은 백년 가까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미라보 다리 아래 센 강 물줄기를 따라 빛난다. 이즈음 널리 거론되는 '스토리텔링'의 원조 격이라고 할 수 있는 미라보 다리의 사연은 무미건조한 삶의 환경, 단조로운 일상, 인간관계의 팍팍함에서 숨통을 틔워주는 활력소, 촉매가 되고 있다.

멀리 센 강까지 갈 필요가 있으랴. 제주 성산포는 이생진 시인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라는 작품을 통하여 더욱 애잔하고 절실한 감성의 물꼬를 터준다.

성산포에서는 바다를 그릇에 담을 순 없지만/ 뚫어진 구멍마다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뚫어진 그 사람의/ 허구에도 천연스럽게 바다가 생긴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만들고/ 바다는 슬픔을 삼킨다/ 성산포에서는 사람이 슬픔을 노래하고/ 바다가 그 슬픔을 듣는다.

- 이생진 '그리운 바다 성산포' 부분

성산 일출봉<사진>에 오르면서 혹은 꼭대기 분화구에서 이 시를 읊노라면 더욱 짠한 감흥이 인다. 해발 182m 일출봉은 바다 속에서 폭발한 화산체로 원래 섬이었지만 모래와 자갈이 쌓여 육지가 되었다. 일출봉 정상에는 면적이 8만여 평이나 되는 분화구가 인상적이다. 흡사 외계인이 지구에 불시착 했다가 황급히 떠난 장소인 듯 낯선 이국취향을 선사한다. 웅장한 자연의 신비위에 애잔한 서정의 옷이 입혀졌으니 더욱 그럴만하다.

삼백 육십오일 두고두고 보아도 성산포 하나 다 보지 못하는 눈/ 육십 평생 두고두고 사랑해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또 기다리는 사람.

<논설위원·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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