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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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앞에서 짝짜꿍 아빠 앞에서 짝짜꿍 엄마 한숨은 잠자고 아빠 주름살 펴져라…."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고 우리는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모든 사람들이 기억하는 국민동요의 한 구절이다. 어려웠던 시절 별다른 문화 미디어를 접하기 어려웠던 환경 속에서 어린이들은 동요를 부르며 꿈을 키웠다. 밋밋해 보이는 가사에 단조로운 멜로디였지만 이런 노래를 떠올리면 궁핍했지만 행복했던 시절의 추억이 생생히 되살아난다.

이런 동요도 기억이 난다. "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 잠꾸러기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 수십 년 전 그 시절 아무 생각 없이 부르던 노래였건만 이 몇 구절은 시, 공간을 뛰어넘어 동심과 유년의 꽃밭으로 우리를 이끌어간다. 모름지기 국민적 공감대가 이루어진다. 대단히 친숙한 노래였음에도 우리는 이 동요에 곡을 붙인 작곡가는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못한다기보다 모르는 것이다.

정순철(1901~?). 충북 옥천군 청산면에서 태어나 두 차례의 일본유학에서 음악을 배우고<사진> 소파 방정환 선생 등과 색동회 활동으로 일제 강점기 선구적인 어린이 운동의 기틀을 다진 정순철 선생의 예술혼과 업적은 6·25동란시 납북으로 희미해져갔다. 월북인사는 물론 납북당하여 고초를 겪고 생사마저 알길 없는 수많은 지식인, 문화예술인들을 한데 묶어 공백으로 남겨두었던 1988년까지의 경직된 우리 사회에서 정순철이라는 걸출한 음악가의 이름은 그렇게 퇴색되어 갔다.

다행히 몇 년 전부터 충북도, 옥천군 특히 정순철기념사업회를 중심으로 선생을 기리는 여러 활동이 적극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도종환 시인이 집필한 ‘정순철 평전’은 그런 노력의 결실인데 정순철 조명노력의 소중한 단초가 되기를 기대한다.

방정환, 김동환, 김기진, 윤석중, 정인섭, 한정동 선생 같은 당대 문인들의 주옥같은 노랫말도 정순철 작곡이라는 옷을 입지 않았더라면 오늘까지 이어져 사랑받지 못했을 것이다. 창작과 교직생활에 헌신하다가 50세에 납북된 이후 우리 현대 문화사에서 잊혀져간 정순철 선생. 지금도 졸업식장에서 졸업식 노래가 울려 퍼질 때마다 환하게 웃고 있을 선생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논설위원·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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