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이 1976년 900만 달러를 투입해 만든 영화 '카사노바'.

자코모 지롤라모 카사노바 데 세인갈트(1725~1798)라는 긴 이름의 소유자.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신으로 프랑스에 와서 자크 카사노바라는 필명으로 프랑스어로 글을 쓰고 문학사에 이름을 올린다.

카사노바라는 이름을 들으면 곧장 엽색가 바람둥이 난봉꾼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부도덕한 여성편력의 소유자를 카사노바라는 이름으로 묶어 부른다. 카사노바는 희대의 호색한, 여성편력의 대명사일까. 그의 굴곡진 삶의 궤적을 훑어보면 이런 평가는 일단 타당성을 갖는다. 연애에 관하여 그는 상대여성도 흔쾌히 동의하고 자신을 거부하지 않도록 배려한다고 천명하였는데 이런 강변이 그의 행각을 정당화, 합리화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탈리아 파도바 대학에서 법학사 학위를 받은 그는 평생 직업도 가족도 없이 영원한 자유인으로 살고자 했다. 흔히 '회상록'으로 불리는 저서 '내 삶의 이야기'는 나이가 들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쇠약해지면서 평생 탐닉했던 '놀이'마저 불가능해지자 젊은 날의 감각을 회상을 통하여 더 분명하게 경험, 확인하고 싶어서 저술했다고 한다.

문학은 물론, 역사와 철학, 자연과학, 의학, 점성술에 이르기까지 두루 정통했던 카사노바는 1760년 8월 초 당대 유럽최고의 지성 볼테르와 문학, 국가, 자유, 관용 같은 관념적 주제를 놓고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논쟁을 벌였다. 박학다식하고 화술에 정통한 모험가, 자유인 카사노바의 이름은 그럼에도 여전히 플레이보이로서의 측면이 더 부각되면서 그가 18세기 유럽사회를 풍미했던 자유인, 모험가로서의 내면조명에는 소홀해왔다.

연애에 몰두하고 카드놀이에 빠지고 학문과 예술을 향유하다가 마침내 자기 자신마저 놀이의 대상으로 삼게 되었다. 프랑스어로 '놀다'라는 단어 jouer(주에)는 연기하다, 내기하다라는 뜻도 포함된다. 평생 놀고, 연기하고 내기를 걸며 삶의 향락과 감각을 극대화시킨 카사노바는 결국 18세기 유럽사회라는 특성화된 시, 공간에 최대한 적응하면서 삶의 총체성을 구현한 인물상으로 꼽힐 만하다.

윤리적 차원에서 여전한 그의 삶의 족적에 대한 부정적 평가는 차치한다면 별다른 목적이나 확고한 철학도 없이 그냥저냥 어정쩡하게 소중한 일상을 소진하는 현대인들에게 카사노바의 치열했던 삶은 나름의 의미를 일깨워주고 있다.

<논설위원·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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