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식 논설위원·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 ?
?

고(故) 백아(白牙) 김창현 선생님께,

하늘나라에서 평안하시지요. 선생님 별세소식을 들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여년이 흘렀습니다. 선생님은 한학과 서예, 인문학에 두루 정통하셨습니다. 일중 김충현, 여초 김응현 선생 등 형제분들과 함께 우리나라 서예계의 거목으로 선이 굵고 기운이 충만한 필체로 명성이 높았지요.

한문시간, 5척 단신에서 뿜어 나오는 고함소리에 졸고 있던 친구들은 혼비백산했고 이미 정신문화 쇠퇴징후가 뚜렷이 드러나던 그 시절 선생님께서는 온고지신, 우리 전통문화의 중요성을 역설하시며 한자 그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 담긴 삶의 지혜와 교훈을 특유의 교수법으로 일깨워 주셨습니다.

특히 한자로 된 4자성어를 중심으로 세상의 흐름과 인간속성의 핵심을 간명하게 가르쳐 주시면서 졸거나 수업태도가 불량하다던가 진지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가차 없이 "뭐야!"하는 청천벽력 같은 일갈로 온 건물이 쩌렁쩌렁 진동했던 기억이 새삼스럽습니다.

그때 배운 4자성어는 삶을 살아오면서 세상 바라보기의 원천으로 피부에 와 닿았습니다. 시간과 장소는 바뀌어도 인간관계의 이러저러한 허실과 세상의 운행원리 그리고 거기서 취해야할 처신과 지혜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이번 19대 총선과정을 통하여 선생님께 배운 사자성어가 바로 문자의미 그대로 또는 커다란 외연을 이루며 현실화, 연출되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4자성어는 긍정적, 부정적 함의 그리고 가치중립적인 교훈을 시사하는 문구로 구분되는데 선거과정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측면의 해석이 대세를 이루었지요. 이합집산, 합종연횡, 초록동색, 면종복배, 감탄고토, 교언영색, 오월동주, 동상이몽, 근묵자흑 같은 정치판의 본질을 함축하는 표현이 생각났고 권토중래, 와신상담, 언감생심, 좌불안석, 노심초사, 설상가상 같이 후보자들의 내면세계를 요약하는 문구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선거는 끝났고 승자와 패자의 극명한 위상차이 속에서 새삼 승부세계의 냉혹함,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정치세계의 냉혹한 본질도 드러나는군요. 쉽지는 않겠지만 이제부터라도 정치계에서도 일취월장, 괄목상대, 살신성인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생님께서 늘 힘주어 말씀하시던 '청출어람(靑出於藍)'같은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풍조가 싹트고 크게 성장했으면 합니다.

<논설위원·한남대 프랑스어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

저작권자 © 충청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